《1990년대 보스니아 내전 당시 ‘인종청소 주범’으로 지목돼 13년 동안 국제사회의 수배를 받아온 전범 용의자 라도반 카라지치(63)가 21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전격 체포됐다. 세르비아에 친(親)서방 정권이 들어선 데 이어 카라지치가 체포됨에 따라 세르비아의 유럽연합(EU) 가입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 세르비아, 라도반 카라지치 전격체포
1990년대 내전때 8000여명 학살등 혐의
도피중 수염길러 위장… 의사생활 하기도
세르비아 EU가입위한 최대 장애물 제거
▽기소 13년 만에 체포=세르비아 대통령실은 이날 “카라지치가 베오그라드에서 세르비아 경찰에 체포돼 전범재판소로 이송됐다”고 밝혔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세르비아의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업무 책임자인 라심 르자지치 씨는 22일 기자회견에서 “카라지치 지지자들로부터 얻은 정보를 토대로 베오그라드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던 그를 붙잡았다”고 설명했다. AP통신은 외국 정보기관이 도움을 줬다고 전했으며, 독일 DPA통신은 보스니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계 군 사령관이었던 전범 라트코 믈라디치(수배 중)를 추적하다 카라지치를 잡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EU 의장국인 프랑스의 대통령실은 “세르비아의 EU 가입을 위한 중요한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AFP통신은 5월 실시된 세르비아 총선에서 친서방 연합이 승리한 점을 상기시키며 카라지치를 체포하지 못한 것이 세르비아의 EU 가입에 최대 장애물이었다고 분석했다.
1945년 옛 유고슬라비아연방의 몬테네그로에서 태어난 카라지치는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로 요시프 브로즈 티토 전 유고 대통령에게 저항하다 투옥됐던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사라예보로 이주해 의학을 전공한 뒤 정신과 의사 및 시인으로 활동했다.
그가 정치에 두각을 나타낸 것은 1980년 티토 대통령 사망 이후 유고슬라비아연방이 해체 과정에 들어서면서부터.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 대통령 주도로 세르비아 민족주의가 힘을 얻자 카라지치는 민족주의 지지자를 규합해 1989년 세르비아민주당(SDS)을 결성한 뒤 당수로 취임했다.
이후 1992∼95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지도자로서 학살과 인권유린을 주도했다. ICTY는 1995년 6월 학살 테러 등의 혐의를 적용해 그를 처음 기소했다. 카라지치는 1996년 6월 모든 직위에서 사임한 뒤 잠적했다.
▽유럽의 오사마 빈라덴=보스니아 내전을 종식시킨 데이턴 협정의 중재역을 맡았던 리처드 홀브룩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유럽의 오사마 빈라덴’이 잡혔다”고 평했다. 그의 도피생활을 소재로 ‘헌팅 파티’라는 영화가 만들어질 만큼 카라지치는 신출귀몰한 도피행각을 벌여왔다.
그가 도피한 뒤 한때 몬테네그로 산악지대에 숨어 세르비아정교회 인사들의 보호를 받으며 수도승 행세를 했다는 추측이 나도는가 하면 북한으로 탈출했다는 설까지 나왔다.
카라지치는 신분증을 위조해 ‘드라간 다비치’라는 가명을 썼고, 도피생활 중 베오그라드에서 대체의학 의사로 활동하며 생활비를 번 것으로 알려졌다. 또 평소 안경을 끼고 흰색 머리칼과 수염을 길게 길러 위장했다고 한다.
▽혐의 및 향후 절차=카라지치의 대표적인 혐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최대 학살로 기록된 ‘스레브레니차 대학살’. 유엔은 보스니아 내전 중 스레브레니차에 안전구역을 설정해 보스니아 내 무슬림과 크로아티아계 주민들을 보호했지만 카라지치는 1995년 7월 이곳을 집중 공격해 8000명 이상을 몰살시켰다.
또 국제사회는 보스니아 내전 도중 최대 30만 명이 사망하고 2만 명의 여성이 성폭행을 당했으며 180만 명이 집을 잃고 강제 이주된 것에 대해서도 카라지치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 ICTY가 기소한 카라지치의 혐의는 무려 15개에 이른다.
세르비아 법원은 카라지치를 네덜란드 헤이그의 ICTY로 이송하라고 22일 명령했다. 카라지치의 변호인은 항소 의사를 밝혔다. AP통신은 사안의 복잡성을 감안하면 그의 재판에는 적어도 몇 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