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폐쇄국가’ 이미지를 벗고 외국인 모시기로 새로운 활력
을 키우려 하고 있다. 반면 ‘이민자의 천국’으로 불리던 미국은 그간의 과도한 이민규제 정책으로 외국 인재들을 내쫓고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문턱 낮추는 日
저출산-고령화시대 ‘외국인 잡기’로 해법모색
유학생 전폭지원-단순노동자까지 고용 확대
관광객 年 600만 명 침체된 내수경기에 활력
“외국인을 모셔라.”
저출산 고령화로 고민하는 일본에서 ‘이대로라면 50년 뒤에는 1억2000만 인구가 9000만 명으로 줄고 경제활동인구(15∼64세)는 51%에 불과하게 된다’는 어두운 전망이 나오면서 외국인은 이제 ‘구세주’로 불린다.
정부는 물론 대학과 기업들은 외국인이 가진 재능이나 두뇌를 노려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폐쇄적이던 일본사회가 과연 ‘개국(開國)’에 성공할 수 있을까.
▽‘이민입국(移民立國)’ 다민족 프로젝트=나카가와 히데나오(中川秀直) 전 자민당 간사장이 이끄는 ‘외국인재교류추진의원연맹’은 지난달 19일 향후 50년 안에 유럽처럼 이민자가 인구의 10%를 차지하는 ‘다민족사회’를 만들자는 내용의 정책보고서를 마련했다. 이를 위해 관련법을 제정하고 이민청을 설립하자는 내용도 담았다.
이달 22일에는 자민당 국가전략본부 ‘외국인노동자문제 프로젝트팀’이 외국인 노동자가 종사하는 업종과 직종의 제한을 철폐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지금까지 전문·기술직만을 받아들이고 단순노동자는 원칙적으로 배제해왔으나 이 제한을 철폐하자는 것이다.
이런 제안들은 가을 임시국회에서 본격 논의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현장에서는 이미 외국인 유학생의 취업이 급증하고 있다.
법무성 입국관리국에 따르면 2003년 일본에 남아 취업한 유학생은 3800명 선이었으나 2006년에는 8300여 명으로 늘었다. 노동정책연구연수기구는 지난해 종업원 300명 이상 기업 3곳 중 하나는 지난 3년간 유학생을 사원으로 채용한 일이 있다고 보고했다.
기업들은 해외 진출 시 이들을 곧장 ‘전력(戰力)’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외국인 채용에 적극적이다.
오쿠다 히로시(奧田碩) 도요타자동차 상담역은 17일 한 강연에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최소한 1억 인구는 필요하다”며 외국인 노동자를 활용하면 일본인에게 취약한 독창성을 보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학생 유치에 안간힘=외국 인재에 대한 ‘입도선매’ 현상도 벌어진다.
6월 말 도쿄(東京) 이케부쿠로(池袋)에서 일본학생지원기구가 주최한 ‘진학설명회’에서는 150개 대학이 부스를 세우고 어학원 등에서 일본어를 배우는 외국인 2000여 명을 상대로 숙소 제공은 물론 수업료 감면제도 등 각종 혜택을 제시하며 유치전을 벌였다.
저출산 탓에 일본 대학들이 정원을 채우려면 수준이 낮은 학생까지 입학시켜야 하는 현실. 그보다는 학력과 의욕이 높은 유학생을 유치해 학교를 활성화하고 국제성을 홍보하고 싶다는 의도다.
대학들은 연말이면 해외 15개국에 나가 비슷한 설명회를 열 예정이다. 성장이 눈부신 아시아의 경우 유럽이나 호주 대학들과 학생 쟁탈전이 벌어진다고 한다.
일본 내 유학생은 1983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당시 총리가 당시 1만 명을 10만 명으로 늘리겠다고 선언한 뒤 지난해 11만8000명 선까지 늘었다.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는 올해 초 2020년까지 유학생 30만 명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3월에는 베트남과 약 1000명을 일본 대학원에 유학시키는 ‘박사육성계획’에 합의했고 인도와는 새로운 공과대 설립에 협력하기로 약속하는 등 우수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노력은 다방면으로 이뤄지고 있다.
▽“외국인 부자들, 환영합니다”=당장의 일본 내 소비시장에서도 연간 600만 명에 이르는 외국인 관광객은 침체에 빠진 소매업계엔 활력의 원천이다.
가장 주목받는 존재는 씀씀이가 큰 중국인들. 일본백화점 협회에 따르면 중국인 관광객의 1인당 평균 구매액은 일본인 평균 구매액의 10배인 6만 엔에 이른다. 업계에서는 중국인 관광객이 사용하는 은행연합카드(은련카드, 직불카드의 일종)가 ‘마법의 지팡이’로 불린다. 최근 1년간 일본 내 이용액은 전년보다 5배 늘어난 40억 엔에 달한다.
돌연 나타난 이들 ‘초부유층’의 지갑을 노린 노력은 다방면에서 나타난다. 백화점이나 대형 매장은 어디서나 은련카드 결제시스템을 갖췄다. 도쿄 긴자(銀座)의 유명 백화점 마쓰자카야에서는 종업원들에게 조회시간에 중국어 인사를 연습시킨다. 중국인 직원 4명이 발음지도를 해줄 정도로 본격적이다.
지난해 한국에서는 260만 명이 일본을 찾아 연간 방문객 1위를 차지했다. 최근 몇 년간 엔화 대비 유로화 가치가 두 배로 뛰면서 유럽 관광객들도 2000년 대비 두 배 정도로 늘었다. 일본은 2010년까지 외국인 관광객을 1000만 명으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빗장 채우는 美▼
첨단기업의 25%는 외국출신들이 세워
비자 - 이민 규제에 고급인력 발길돌려
“경쟁력 강화위해 장벽 낮춰야” 목소리
“미국은 세계에서 모여든 가장 유능한 인재들을 교육시킨 뒤 내쫓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외국 인재들은 미국 경쟁력의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첨단기술 분야에서 기여하는 몫이 크다.
하지만 까다로운 비자 및 이민제도 때문에 ‘이민자의 나라’ 미국에서 정작 외국 인재들이 정착하기는 어렵기만 하다. 재계는 미국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민제도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국기업연구소(AEI)가 발행하는 격월간지 ‘아메리칸’ 최신호는 학계 및 경제계의 최근 보고서들을 인용해 외국 인재들을 박대하는 미국의 현주소를 진단했다.
▽“미국 경쟁력의 4분의 1이 외국 인재의 힘”=미국 듀크대 연구팀은 1995∼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정보기술(IT) 생명공학기술(BT) 등 첨단기술 기업 중 연매출 100만 달러 이상에 종업원 20명 이상인 기업 2054곳의 창업자들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이들 기업의 25.3%는 외국 출신 이민자들이 설립한 것으로 나타났다. 분야별로는 반도체 분야가 35.2%로 가장 많았고, 이어 컴퓨터 및 커뮤니케이션(31.7%), 소프트웨어(27.9%) 순이었다.
출신 국가별로는 인도가 26%로 가장 많았고 이어 영국(7.1%), 중국(6.9%), 대만(5.8%) 순이었다. 한국은 4%로 7번째였다.
2005년 기준으로 이들 기업의 총매출액은 520억 달러(약 52조 원), 종업원은 45만여 명에 이를 만큼 미국 경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이 연구팀은 설명했다.
또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 통계에 따르면 2006년 미국에서 출원한 국제특허의 26%가 미국 거주 외국인이 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998년(8%)에 비해 8년 만에 3배 이상 높아진 것이다.
▽“경쟁력 높이려면 외국 인재 잡아야”=이처럼 외국인들이 미국의 경제와 경쟁력 제고에 기여하고 있지만 외국인이 미국에 정착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미국에서 취업이민을 하려면 먼저 노동허가증을 받은 뒤 취업이민청원서(I-140), 영주권 신청서(I-485)를 내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 현재 이 과정을 통과하기 위해 대기 중인 외국인은 총 50만 명. 지난 10년 새 I-140 대기자는 7배, I-485 대기자는 3배가량 늘었다.
듀크대 연구팀은 “외국 인재들이 영주권을 얻기 위해 무한정 기다려야 하는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또 전문직 취업비자(H-1B)로 입국한 경우는 체류기간이 6년에 불과하고, 입국자의 배우자는 미국에서 직업을 가질 수 없다. H-1B로 일하다 영주권 신청 절차에 들어간 뒤에는 직장이나 업무를 바꿀 수도 없다. 변경하면 신청 절차를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이런 이유 때문에 합법적으로 미국에 입국해 기술자, 과학자, 연구원으로 일하던 외국인들이 미국을 떠날 수밖에 없다”며 외국 인재들이 쉽게 영주권을 얻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이와 별도로 상공회의소 등 16개 경제단체가 참여하는 연합체 ‘미국 잠재력 개발’은 15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이민제도 개혁 실패가 미국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이어 “첨단 분야의 외국 인재들을 끌어들일 수 있도록 비자 및 이민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