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독도문제 잘 알아”… ‘주인없는 섬’ 철회할까

  • 입력 2008년 7월 31일 02시 55분


美, 독도 ‘뜨거운 문제’로 번지자 당혹

“실무적 판단… 배경 없어” 해명 분위기

힐, 李주미대사 만나 “적절한 방안 검토”

《미국 행정부가 독도 영유권의 재분류가 일으킨 외교적 파문에 당혹스러워하며 다른 분쟁지역까지 ‘주권 미지정’으로 분류하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주권 미지정’ 분류 정책 자체를 철회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9일(현지 시간) 이태식 주미 한국대사와 만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이름을 거론하며 국무부 측과 협의해 문제를 해결하길 바란다는 태도를 보인 것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독도, ‘주권 미지정’ 공교로운 첫 사례=미국 지명위원회(BGN)가 독도를 ‘주권 미지정’으로 분류한 것은 지난해 1월 전 세계 50여 개 분쟁지역 전체를 ‘주권 미지정’으로 재분류하기로 결정한 데 따른 조치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워싱턴의 정통한 소식통은 30일 “BGN은 지난해 1월 중국-베트남 간의 시사군도(西沙群島·Paracel Islands), 일본-러시아 간의 쿠릴 열도 등 세계의 주요 분쟁지역 50여 곳의 주권 관련 표기를 정리하기 위해 ‘주권 미지정’이란 코드를 신설했다”고 전했다.

이 분류는 ‘해당 지역의 주권 상태를 확실히 단정할 수 없거나, 미국이 한쪽 편을 들지 않는 분쟁지역’에 대해 사용될 수 있도록 규정됐다.

이후 BGN은 지난해 6월 이 분류에 어떤 지역을 포함시킬 것인지 검토했다. 그 결과 일단 난사군도(南沙群島·Spratly Islands), 시사군도에 대해 ‘국명’을 검색하면 소속 국가 대신 섬 이름이 나오도록 조치하기로 했다. 쿠릴 열도(북방 4개 섬)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사실상 실행이 되지 않던 ‘주권 미지정’ 표기의 첫 적용 대상으로 독도가 선정된 계기는 지난해 말 주제어 분류 정리 작업을 하던 의회도서관이 ‘독도’ 대신 ‘리앙쿠르 록스’를 사용하는 BGN에 질의한 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의회도서관의 질의를 받은 BGN은 국무부 등에 의견을 물어본 뒤 ‘주권 미지정’ 분류를 독도에 적용키로 했다는 것이다.

이런 정황만으로 보면 ‘주권 미지정’ 분류는 미국 내 지리, 지명 전문가 그룹의 실무적 판단에 따라 이뤄진 것이며 우연의 일치로 한일 간 독도 논란과 시기가 겹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BGN의 해외지명 담당 사무총장인 렌덜 플린 씨를 비롯한 전문가 그룹이 ‘주권 미지정’ 분류를 만들기로 한 배경에 일본을 배려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는지는 단언할 수 없다.

영토 문제로 갈등이 빚어지는 여러 지역에 일본이 관련돼 있고 대부분 일본에 불리하게 ‘실효적 지배 국가’가 영유권 국가로 표기돼 있기 때문이다.

▽당혹스러워하는 미국 정부=독도 문제가 불거진 뒤 미일동맹과 기타 우방과의 관계에서 균형을 취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인 미 백악관과 국무부는 이번 독도 파문에 매우 당혹스러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외교 소식통은 “미일동맹이 2000년대 들어 미영동맹 수준으로 격상됐지만 북핵 문제와 테러와의 전쟁 등 여러 측면에서 미 행정부로선 한미동맹을 더 신경 쓰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주권 미지정’ 분류 방침을 앞으로 쿠릴 열도, 난사군도 등 대표적 분쟁지역으로 확대 적용할 경우 이번 독도 파문 못지않은 논란이 계속될 수 있다는 점을 미 행정부는 우려하고 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존 네그로폰테 국무부 부장관 등은 28일 이태식 주미대사와의 면담에서 “시기적으로 적절치 못했다”고 인정했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29일 이 대사와의 이틀째 면담에서 적절한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미국 내 지명 전문가 그룹의 사정에 정통한 한 학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미국 측으로부터 이 문제와 관련해 ‘검토해 보겠다’는 답변을 들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앞으로 백악관, 국무부와 플린 박사를 중심으로 한 전문가 그룹 사이에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도 있다. 플린 박사는 28일 김영기 조지워싱턴대 교수가 ‘임시적으로라도 원상회복할 수 없느냐’고 질의한 데 대해 “불가능하다”고 답변했다.

플린 박사는 본보의 전화 및 e메일 질의서에 ‘공보과에서 답해줄 것’이라고만 답변했고, BGN 공보과는 국무부 공보과로 모든 책임을 넘겼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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