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양심 ‘生의 수용소’ 떠나 영원으로 가다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8월 5일 02시 59분



■노벨상 수상작가 솔제니친 타계 1918~2008

스탈린 탄압 고발 소설로 反체제 상징 떠올라

체포 → 강제노동 → 복권 → 추방 ‘가시밭길’ 인생

20년간 망명생활… 귀국후 국가훈장 받기도


옛 소련 시절 대표적인 반체제 작가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사진)이 3일(현지 시간) 심장마비로 타계했다고 인테르팍스통신이 보도했다. 향년 89세.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은 4일 “그는 특별한 운명을 살다 갔다”고 애도했고,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도 “그는 20세기 러시아의 가장 위대한 양심이었다”고 추모했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이 전했다. 그는 6일 돈스코이 묘지에 안장된다.

솔제니친은 소련의 강제노동수용소(굴라크) 철조망 뒤에서 일어난 사건을 폭로한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발표한 이래 소련과 해외에서 작가로서 명성을 쌓았다.

그의 소설은 소련 독재자 스탈린의 처참한 인권유린 현장을 고발한 최초의 문학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미국의 문학평론가 마크 슬로님은 “과장이나 분노를 배제하고 가장 무서운 현실을 자세히 드러낸 것이 소설의 백미”라고 말했다.

솔제니친의 일생은 체포→강제노동→복권→추방→복귀로 이어지는 소련 역사의 그늘로 점철됐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포병 대위로 근무하던 중 ‘군사지휘관이 무능하다’는 편지를 썼다는 이유로 체포됐다. 그가 무능하다고 가리킨 지휘관은 ‘구레나룻을 기른 자’였다. 소련 비밀경찰은 이것이 스탈린을 지칭했다고 보고 그를 8년간 중앙아시아의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냈다.

그가 체험한 굴라크 생활의 축소판인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스탈린 사망 이후 흐루쇼프가 집권했던 1962년 문화 해빙기를 맞아 출판의 빛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소련의 현실을 폭로하는 문학 활동은 오래가지 못했다. 국가보안위원회(KGB)와 소련 작가동맹은 감시와 검열로 그의 작품 활동을 막았다.

1967년 그는 원고를 압수한 KGB의 비열한 행위를 비판하고 표현의 자유를 주창했다. 당시 그가 작가회의에 보낸 글은 당국의 검열을 피해 일반 독자들에게 필사본으로 전달됐다. 이후 솔제니친은 러시아 지식인의 순수와 용기의 상징이 됐다.

그는 1969년 집필을 끝낸 ‘암병동’에서 관료주의에 젖은 공산당원을 조롱했다.

1970년 스웨덴 학술원은 “솔제니친이 윤리적인 힘을 갖고 러시아 문학의 전통을 추구하고 있다”며 그의 노벨상 수상을 결정했다. 소련 당국이 귀국길을 막을 것을 우려해 수상식장에는 가지 않았지만 그는 “한마디의 진실이 백 마디 말보다 더 가치 있다”는 수상 소감을 전달했다.

1974년 2월 죄수의 중노동과 소련의 고문을 고발한 ‘수용소군도’가 프랑스에서 출판된 뒤 소련 정부는 솔제니친의 시민권을 뺏고 해외로 추방했다. 당시 이 소설을 소지한 소련 시민은 무조건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스위스를 거쳐 미국에 머물렀으며, 소련이 붕괴된 뒤인 1994년에야 모스크바에 돌아와 정착했다.

솔제니친은 지난해 6월 러시아 정부로부터 국가공로훈장을 받았다. 심장병 때문에 수상식장에 가지 못한 그는 영상으로 전한 인사말에서 “러시아가 거쳐 온 고난은 우리가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는 것을 막고 우리를 파멸로부터 구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작품은 1970, 80년대 국내에도 번역 출간됐다. 세계에서 팔린 그의 책은 3000만 부가 넘는다고 러시아 언론들이 전했다.

고일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는 “러시아 사실주의를 계승해 스탈린 시대 어두웠던 소련의 모습을 조명하는 데 힘쓴 저항 작가”라며 “고난의 길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은 반체제 지식인이라는 점에서 그의 작품이 널리 읽히게 됐다”고 말했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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