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 동포들의 따뜻한 사랑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달 31일 오전 중국 지린(吉林) 성 투먼(圖們) 시 량수이(凉水) 진 팅옌(亭巖) 촌 마을회관 앞. 순수 중국동포 180여 가구가 살고 있는 이곳에 모처럼 동네잔치가 열렸다. 주민들은 소와 돼지를 잡아 푸짐한 잔칫상을 마련했다. 노인들은 한복을 입고 장구와 꽹과리를 치며 흥을 돋웠다.》
일제때 강제 이주 충북인 마을
4년째 아이들 가르치고 밭일
총장은 장학금-발전기금 전달
주민들 “잘사는 마을로 변신중”
이날 행사는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5일까지 팅옌 촌과 인근 량수이 촌에서 봉사활동을 한 충북대 해외봉사단원들과 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찾아온 임동철 충북대 총장 등 대학 관계자 등을 위한 자리. 충북대 학생들의 팅옌 촌 봉사는 올해로 4회째다.
▽“낯설고 불편하지만 큰 보람”=연창원(23·구조시스템공학 4학년) 씨 등 봉사단원 20명은 2주간 이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마을 청소와 밭일 등을 도왔다.
소학교 중학교 학생들에게는 미리 준비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알기 쉽게 설명하며 다가갔다. 처음에 서먹해하던 학생들은 나중에는 봉사단원들을 친오빠와 누나처럼 따랐다. 량수이 촌을 거쳐 팅옌 촌으로 왔을 때는 10km나 떨어진 먼 거리를 걸어서 찾아오기도 했다.
봉사단원 한유미(21·영어교육과 2학년) 씨는 “마음의 문을 열지 않던 학생들이 나중에는 무척이나 따라 가족과 같은 정이 들었다”며 “봉사단원 모두 ‘고맙다’는 내용의 편지를 많이 받았다”고 자랑했다.
오병헌 봉사단장은 “더운 날씨에다 먹고, 씻고, 자는 것 모두 불편했지만 모두가 한마디 불평 없이 봉사활동을 벌였다”고 말했다.
임 총장은 이날 창춘(長春)사범대에 재학 중인 이 마을 출신 이상군(22) 씨 등 학생 12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이춘봉(47) 팅옌 촌장은 “학생들과 대학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아 모두들 고국 동포의 따뜻한 정을 고마워하고 있다”고 감사를 표했다.
▽부농 꿈 키우는 ‘청주아리랑’의 고장=팅옌 촌은 1938년 일제의 강제 이주 정책에 의해 충북 청주와 청원 보은 옥천 등지의 농민 80가구가 옮겨와 생겨난 마을. 모두들 ‘배불리 살 수 있다’는 일제의 꾐에 빠져 왔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척박한 땅뿐이었다. 그러나 지독한 가난과 차별 속에서도 우리말과 글을 지키며 꿋꿋이 살아왔다.
팅옌 촌이 한국에 알려진 것은 1990년대 초반. 당시 청주농악보존회장을 맡고 있던 임동철 총장 등에 의해 이곳에 ‘청주아리랑’이 구전돼 온 사실이 밝혀지면서부터다.
임 총장은 이후 지역 내 다양한 인사들과 ‘정암회’를 만들어 이들에게 장학금과 마을 발전기금을 전달하는 등 꾸준히 도와 왔다.
충북도는 2000년 10월 팅옌 촌 1세대 32명을 초청해 가족 상봉을 주선했으며 이듬해부터는 해마다 현지 농민을 데려와 농업연수를 하고 있다. 청원군도 2002년부터 격년제로 이주민 2세들을 초청해 선진 영농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이 같은 지원이 이어지면서 ‘부농의 꿈’도 서서히 익어가고 있다. 초가집 일색이던 마을은 벽돌집으로 탈바꿈했고 마을 안길도 모두 포장됐다. 폐교에는 된장과 고추장 공장이 들어섰다. 90마리의 소를 키우고 있는 주민들은 공동 한우사육단지도 만들 계획이다.
지린 성 정부도 이 마을을 ‘샤오캉춘(小康村) 사업’ 특별지원 대상 지역으로 선정해 자금을 지원해 주고 있다.
한영옥(46) 팅옌 촌 서기는 “동포들의 성원을 바탕으로 팅옌 촌이 중국 내 농촌마을 가운데 가장 잘 사는 마을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주민 모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투먼=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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