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5명을 둔 미국인 엄마 세라 래펀테인(39) 씨는 요즘 장난감을 바꾸고 있다. 중국산 플라스틱 제품들을 없애는 대신에 목재 재질이나 유럽연합(EU)의 안전성 기준을 통과한 독일산 장난감을 샀다. 유아용 플라스틱 컵은 스테인리스로 교체했다.
그녀는 최근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첫째 아들이 국가가 통관을 허락한 유해 장난감에 12년 동안이나 노출돼 왔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부모들의 이런 불안감에 대처하기 위해 미 의회가 본격적으로 나섰다. 상·하원이 지난주 장난감의 유해성분 규제를 강화한 ‘소비제품 안전성 촉진법’ 수정안을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킨 것.
장난감 업계의 대대적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신중한 지적도 나온다.
○ 벌금 최고 1500만 달러로 올려
이번에 의회를 통과한 수정안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서명 후 6개월이 지나서부터 본격 시행된다.
이 수정안에 따르면 납과 6가지 종류의 프탈레이트 성분이 포함된 장난감은 앞으로 판매가 금지된다. 제조업체는 장난감으로 인한 질병과 상처, 사망 등 피해를 전부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제조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라벨을 제품에 부착해야 한다. 또 12세 미만 어린이가 쓰는 제품의 안전성 검사에는 제3자가 의무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이를 어기면 벌금은 기존의 두 배인 10만 달러, 부과 가능한 최대 벌금 액수도 1500만 달러로 올랐다.
미국소비자연맹의 레이철 웨인트로브 이사는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이번 법안은 제품 시장을 크게 바꿔놓게 될 중요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미국에서는 지난 한 해에만 4500만 개의 장난감이 리콜됐다. 세계 최대 장난감업체인 마텔사의 제품만 2000만 개가 회수 조치됐다. 이후에도 소비자들의 우려가 계속되면서 최근 9개월간 장난감 리콜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22% 늘었다.
대부분이 중국산인 이 제품들은 어린이가 빨았을 때 체내에 흡수되는 유해 화학물질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플라스틱을 부드럽고 유연하게 만드는 가소제 프탈레이트는 생식기능에 문제를 일으키고 신장과 간을 손상시키는 발암물질로 알려져 있다.
○ 대통령 서명 뒤 6개월 후부터 시행
엑손모빌 같은 화학업체와 장난감 제조업체들은 이번 법안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이들은 프탈레이트가 과거 수십 년간 사용돼 왔고 인체에 유해하다는 충분한 증거가 없다고 주장해 왔다. 현재 사용되는 화학제품의 사용이 금지되면 더 위험한 성분으로 대체될 가능성도 있다는 위협 섞인 경고를 내놓기도 했다. 1999년부터 이런 화학물질 사용을 금지한 EU와 달리 미국의 규제 강화가 계속 늦춰진 것도 이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들 업체가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해 의회에 거액의 로비를 해왔다”고 보도했다. 화학업체들은 프탈레이트가 안전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도록 자금을 댄 의혹도 받고 있다.
미 환경단체인 천연자원보호위원회(NRDC)는 최근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를 상대로 “장난감 및 화학 업체들과의 의견교환 내용을 공개하라”는 소송을 냈다.
토이저러스나 월마트 같은 대형 유통업체들은 법안 통과를 환영하며 규제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법안이 통과됐더라도 시행까지 6개월이 남아 있는 만큼 올해 말 선물에는 유해한 장난감이 섞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