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한국 지도자 평가 1944년 미군문서 발굴

  • 입력 2008년 8월 9일 03시 01분


미국 육군 정보당국이 태평양전쟁 당시 한국인 지도자들의 자질과 친미, 친일 성향을 분석한 평가 카드. 고려대 설립자인 김성수 전 부통령을 평가한 이 카드(위쪽)에서 작성자인 로버트 키니는 ‘정치·사회적 성향’ 항목에서 ‘반일적’ ‘민족주의적’ ‘보수적’ ‘친미적’ ‘공공의식 있음’이라고 분류했다. 카드 뒷면(아래쪽)에는 손으로 쓴 인물평이 자세히 적혀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미국 육군 정보당국이 태평양전쟁 당시 한국인 지도자들의 자질과 친미, 친일 성향을 분석한 평가 카드. 고려대 설립자인 김성수 전 부통령을 평가한 이 카드(위쪽)에서 작성자인 로버트 키니는 ‘정치·사회적 성향’ 항목에서 ‘반일적’ ‘민족주의적’ ‘보수적’ ‘친미적’ ‘공공의식 있음’이라고 분류했다. 카드 뒷면(아래쪽)에는 손으로 쓴 인물평이 자세히 적혀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인촌은 믿을만하고 신중한 反日성향의 코즈모폴리턴”

미국 육군 정보당국이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4년 인촌 김성수, 고당 조만식 등 당시 한국인 지도자들의 자질과 친미, 친일 성향 여부를 평가한 문서가 발굴됐다.

연합뉴스는 7일 워싱턴 근교 연방정부기록보존소(NARA)에서 김성수 조만식 윤치호 양주삼 이광수 등 5명을 분석해 놓은 평가 카드 5장을 입수했다고 보도했다.

1인당 A4 용지 절반 크기인 카드 앞면에는 이름 나이 자질 현직 특장(special skills)과 함께 정치·사회적 성향, 정치체제에 대한 신조, 활용도 등이 기록돼 있다. 뒷면에는 작성자가 인물평을 적어 놓았다.

1944년 4월 10일 로버트 키니가 작성한 것으로 기록돼 있는 이 카드는 비밀로 분류돼 있다. 일제와 전쟁을 치르고 있던 미국이 일제치하 조선 명망가들의 신상을 파악해 활용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인촌 김성수=고려대 설립자인 김성수 전 부통령의 ‘정치·사회적 성향’에 대해 이 카드는 ‘반일(反日)적(anti-Japanese)’ ‘민족주의적(nationalistic)’ ‘보수적(conservative)’ ‘친미적(pro-American)’ ‘공공의식 있음(public spirited)’이라고 분류했다.

자질을 평가한 코너에선 능력, 신뢰도, 타인과의 협업 능력, 공동체 내의 위상 등 4개 항목 모두 ‘뛰어남(superior)’이라고 평가했다.

현직은 ‘대학총장, 사업가’, 특장은 ‘행정과 교육’이며 영어가 능통한 것으로 기록됐다.

미군 당국은 인물평에서 “미스터 김은 조선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한국과 일본, 서양에서 교육 받았다(중략). 서울의 사학인 보성전문 교장이다. 비(非)기독교인이며 신뢰할 만하고 신중하다. 교육을 잘 받은 ‘코즈모폴리턴’(사해동포주의)적인 지도자”라고 썼다.

▽고당 조만식=조선민주당 당수를 지낸 조만식 선생에 대해서는 “유복하고 귀족적인 한국 가정에서 태어났다. 북부 출신이지만 많은 존경을 받고 있다. 한국의 잠재적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다. 기독교 활동에 적극적이며 신뢰할 만하고 능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정치·사회적 성향에 대해선 ‘공공의식’과 ‘국제적 감각’이 있고 ‘민족주의적’ ‘친미적’ ‘반일적’이라고 평가했다.

▽춘원 이광수=미 당국은 “교육을 잘 받은 한국의 대표적 작가이자 신문인의 한 명이다. 1930년대에 일본에 체포 구금돼 고문을 받았다. 석방된 후 일본에 협력했다는 비난을 받았고 이전의 영향력 일부를 잃었다”고 평했다.

능력 및 타인과의 협업 능력에서는 ‘뛰어남’에 체크가 됐지만 신뢰도와 공동체 내의 위상 항목에서는 ‘보통’ 평가를 받았다. 정치·사회적 성향에선 ‘공공의식’ ‘리버럴’ ‘국제마인드’ ‘민족주의적’ ‘친미적’ 등으로 평가됐으나 ‘친일적 또는 반일적’ 항목은 공란으로 남겨 놨다.

▽윤치호=대성학교 교장을 지낸 그에 대해 미 당국은 “일부 활동에서 일제와의 협력을 강요받았다. 그러나 그의 위상은 높은 편이어서 연합군의 한국 내 활동에 귀중한 협력자가 될 것”이라고 적었다.

▽양주삼=양주삼 초대 대한적십자사 총재에 대해선 “능력 있고 신실한 지도자”라고 적혀 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연합뉴스

■ 작성자 로버트 키니는

1935∼37년 서울외국인학교 교사 겸 교장대리를 지냈으며 1942∼46년 미 육군 정보국에서 조사분석가로 한국 관련 정보를 담당했다. 또 미 군정청 경제고문이자 미소공동위원회 미국 측 실무자로 활동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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