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러시아 그루지야 전쟁 발발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8월 11일 03시 00분



피란민들 “총성 덮인 거리에 민간인 시신 나뒹굴어” 눈물

러 탱크-박격포 행렬… 장기전 대비 곳곳 진지 구축

“다친 주민들 치료못받고 식량 끊긴채 폐허더미 방치”


남(南)오세티야 독립을 둘러싼 러시아와 그루지야의 전쟁이 사흘째를 맞은 10일 오후 두 나라의 경계인 카프카스 산맥 곳곳에서는 포탄 발사로 산불이 발생해 뿌연 연기가 솟아올랐다.

이 산맥 북쪽 북(北)오세티야(러시아 영토)에서 남오세티야(그루지야 영토)로 가는 산악 도로에서는 러시아군 탱크와 박격포 부대가 줄지어 이동하고 있었다.

러시아군은 이날 북오세티야의 작은 도시 알라기르 남쪽에 대규모 기계화군단을 전진 배치하기 위해 후방에서 수송된 장갑차를 특수 트럭으로 나르기도 했다.

기계화부대가 지나가는 야트막한 산 아래에는 포문을 남쪽으로 향한 박격포들을 배치했다. 송유관이 지나는 길목이나 변전소가 있는 건물 옆에는 대공포를 올려놓은 방어진지를 만들어 장기전에 대비하는 모습도 보였다.

전차부대가 집결하면서 후방 보급부대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북오세티야의 수도 블라디카프카스 서쪽 자동차 도로에는 기름과 식량을 실은 소련제 군용 트럭이 줄지어 지나갔다. 시민들은 “승전 기념일에 펼쳐지는 러시아군의 시가행진을 보는 듯하다”고 말했다.

10일 오전 교전이 일어난 츠힌발리에서 북쪽으로 45km 떨어진 로카 터널 앞. 평소 북오세티야와 남오세티야의 교류 통로였던 이 터널은 전쟁이 일어난 뒤에는 남오세티야 주민들의 탈출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총을 든 러시아군과 국경수비대가 이곳을 지나는 차량의 짐칸과 승객들을 일일이 검문했다. 기자가 탄 택시가 이곳에 도착하자 군인들은 “허가받은 러시아 국민과 독립국가연합(CIS) 시민 이외에는 절대 통과할 수 없다”며 길을 막았다.

남오세티야에서 트럭을 타고 터널을 빠져 나왔다는 자울(35) 씨는 “3일간 러시아군과 그루지야군의 전투로 츠힌발리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됐다”며 한숨을 쉬었다.

북오세티야 친척집으로 피란 온 츠힌발리 주민들은 러시아 TV에 나와 전쟁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한 피란민 여성은 “시가전이 벌어진 츠힌발리의 러시아 평화유지군 본부 옆 아파트 주변에는 수습되지 않은 민간인 시신이 셀 수 없이 많다”며 눈물을 흘렸다.

또 다른 여성은 “젊은 사람들은 재빨리 빠져나왔지만 거동이 불편한 임신부와 아이들은 전투가 벌어지는 시가지에 그대로 남았다”고 말했다.

또 피란민들은 그루지야군의 공격으로 부상한 주민들이 수술을 받지 못한 채 물과 빵이 바닥나 폐허가 된 시가지에 남아 처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울먹였다.

그루지야 정부가 츠힌발리의 군인들에게 철수 명령을 내린 10일 오전 지역 방송들은 남오세티야군도 반격 작전에 나섰다는 소식을 전했다. 남오세티야군은 러시아군의 지원을 받아 그루지야군에 대항한 병력. 이들의 반격 작전은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군사전문가 이고리 세르게예비치 씨는 “국제사회가 남오세티야의 평화 문제를 논의하는 도중에도 러시아와 그루지야 간의 국지전은 계속돼 무고한 희생자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블라디카프카스(북오세티야)

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