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오카(花岡) 광산은 태평양전쟁 당시 중국인 포로 1000여 명 중 419명이 죽임을 당해 ‘중국인 학살 광산’으로 유명합니다. 당시 이 탄광에는 강제 징용됐던 한국인이 4000여 명이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이들의 실상에 대해선 알려진 게 거의 없습니다.”
1940년대 중국인 학살 광산으로 유명한 일본 아키타(秋田) 현의 하나오카 광산. 이곳에 한국인이 4000여 명이나 강제 징용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하나오카 광산의 한국인 강제 징용 사건을 집중적으로 연구해 온 일본 역사학자 자타니 주로쿠(茶谷十六·67) 아키타 현 민족예술연구소장은 13일 이같이 밝히고 “이제부터라도 얼마 남지 않은 고령의 한국인 생존자들로부터 당시 하나오카 광산의 실상이 어땠는지를 제대로 알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하나오카 광산은 태평양전쟁 당시 총알과 폭탄 제조용 구리를 주로 생산했던 광산. 그동안 파악된 하나오카 광산의 한국인 강제 징용자는 2027명이다. 그러나 자타니 소장은 이보다 훨씬 많은 4000여 명의 한국인이 강제 징용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지에 살고 있는 한국인 강제 징용자들과 일본인 광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하나오카 탄광에는 실제로 4000여 명에 가까운 한국인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가운데 절반 정도의 명부만 남아 있다는 건 석연치 않은 일입니다.”
그는 “현재까지 파악된 한국인 생존자 서른다섯 분 모두 팔순, 구순의 노인들이라 언제 돌아가실지 모른다”며 “그동안 진실을 숨기려는 일본 정부와 싸웠다면 이제는 시간과의 전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8·15 광복절을 맞아 11일 한국을 찾은 자타니 소장은 16일까지 머물며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진상규명위)와 함께 한국에 있는 생존자와 희생자 유족들을 만날 계획이다.
자타니 소장은 12일 경기 평택시에 있는 최광순(68·여) 씨를 만났다. 최 씨가 네 살 때인 1944년 5월 29일, 그의 아버지는 탄광 갱도 붕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최 씨는 “사진 속의 비석이라도 만져 보자”며 차타니 소장이 전해 준 하나오카 광산 희생자 추모 비석 사진을 가슴에 묻고 눈물을 흘렸다.
최 씨는 자타니 소장의 손을 꼭 잡으며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는 재가하셔서 할머니 손에 어렵게 자랐다”며 “아버지를 앗아간 일본이 밉기만 했는데 이렇게 좋은 일을 해 주셔서 고맙다. 오래 사시면서 제발 숨겨진 진실을 밝혀 달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차타니 소장은 “당시 한국인들과 그 후손들이 겪었던 아픔을 자세히 기록한 책을 써서 후손들에게 전하겠다”며 “일본인들이 기억하지 않으려는 ‘불행한 역사’를 꼭 알리겠다”고 답했다.
한편 진상규명위는 앞으로 하나오카 광산에 강제 징용된 한국인들에 대한 조사를 집중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평택=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