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美동맹이 살길”… 동유럽 잇단 ‘러브콜’

  • 입력 2008년 8월 18일 02시 55분


그루지야 난민 11만8000명 발생러시아-그루지야 간의 전쟁으로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는 남오세티야 주민들이 16일 츠힌발리의 한 교회 주변에서 긴급 구호품을 받기 위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은 이번 전쟁으로 11만8000여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츠힌발리=로이터 연합뉴스
그루지야 난민 11만8000명 발생
러시아-그루지야 간의 전쟁으로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는 남오세티야 주민들이 16일 츠힌발리의 한 교회 주변에서 긴급 구호품을 받기 위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은 이번 전쟁으로 11만8000여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츠힌발리=로이터 연합뉴스
러, 냉전종식후 첫 무력침공에 ‘프라하 악몽’ 재발 우려

나토가입 - MD기지 설치 등 ‘안보우산’ 편입 욕구 거세

세계 질서 ‘친미동맹 vs 권위주의 강대국’ 재편 가속화

“그루지야 거리에 진주한 러시아 전차는 40년 전 프라하 거리를 점령한 소련군을 떠올리게 해준다. 그런데 그것은 단지 지나간 역사가 아니다.”

체코의 미레크 토폴라네크 총리가 ‘프라하의 봄’을 짓밟은 소련군의 체코 침공 40주년 기념일(20일)을 앞두고 체코 일간지 믈라다 프론타 드네스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

동서 냉전 종식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가 이웃 국가에 군사력을 사용하는 것을 지켜본 군소국들에 그루지야 사태는 21세기에도 지역 내 강대국 간 군사력의 균형추, 전쟁 억지력은 여전히 절실히 필요한 것임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그 영향으로 동유럽 및 옛 소련 국가들에선 미국 중심의 서방체제 편입을 위한 노골적인 ‘러브콜’이 나오는 등 이번 사태가 21세기 초반 세계 질서의 변화를 가속화하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20세기 중후반의 ‘자본주의권과 사회주의권’의 대결이 21세기에는 ‘친미(親美) 서방권과 권위주의 정치체제를 가진 강대국들’이 맞서는 구도로 재편되는 양상인 것이다.



▽서방에의 ‘러브콜’=우크라이나 외교부는 16일 성명을 발표하며 “우리의 미사일 경보시스템을 서방 국가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앞서 14일 미국과 폴란드는 1년이 넘게 진통을 겪던 미사일방어(MD)기지 협상을 전격 타결했다.

지난주 그루지야 수도 트빌리시에선 폴란드 우크라이나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등 6개국 대통령이 군중집회 연단에 동시에 서서 그루지야에 대한 지지를 다짐하면서 러시아를 비판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는 소련 붕괴 후 이미 10개국이 가입한 데 이어 알바니아와 크로아티아가 지난달 가입 절차를 밟기 위한 서명을 했다. 마케도니아 그루지야 우크라이나도 가입을 희망하고 있다.

특히 각각 ‘오렌지혁명’(2005년)과 ‘장미혁명’(2003년)을 통해 친서방 정부가 들어선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에선 나토가 제공하는 ‘안보 우산’에의 편입 욕구가 더욱 거세다.

반면 러시아는 주변 국가들의 나토행과 MD 확산을 방치할 경우 서방권에 포위되는 양상이 되므로 이를 견제하기 위한 힘의 과시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역사의 회귀?=네오콘(신보수주의)의 대표적 이론가인 로버트 케이건 씨는 16일 위클리스탠더드 기고문에서 “공산주의 제국이 붕괴하자 많은 이론가는 강대국 간의 갈등은 과거의 일이 되고, 자유민주주의 가치 아래 온 세계가 하나가 되는 편안함을 꿈꿨지만 권력 경쟁의 부재는 짧은 기간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케이건 씨는 “중국과 러시아의 경제 발전은 서구 학자들이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정치적 민주화를 동반하지 않은 채 진행되고 있다”며 “중국과 러시아가 일어섬에 따라 세계는 ‘자유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체제 간의 점증하는 긴장과 때로는 대결 구도’로 들어섰다”고 진단했다.

폴란드 데모스유로파의 파베우 시비에보다 소장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다시 출현한 강대국(러시아)은 자신의 이익을 담보하기 위해선 군사력을 사용할 의지가 있음을 보여줬다”며 “국제관계의 현실이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의 한 외교전문가는 “그루지야 사태는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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