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이후 중국 어디로<1>부활하는 중화

  • 입력 2008년 8월 25일 03시 00분


탁구 男단식 시상대 오성홍기만 펄럭베이징 올림픽 탁구 남자 단식에서 금, 은, 동메달을 휩쓴 왕리친(왼쪽), 마린(가운데), 왕하오 등 중국 선수들이 23일 시상식에서 오성홍기가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계기로 ‘중화 부흥’의 기치를 높이고 있다. 베이징=AFP 연합뉴스
탁구 男단식 시상대 오성홍기만 펄럭
베이징 올림픽 탁구 남자 단식에서 금, 은, 동메달을 휩쓴 왕리친(왼쪽), 마린(가운데), 왕하오 등 중국 선수들이 23일 시상식에서 오성홍기가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계기로 ‘중화 부흥’의 기치를 높이고 있다. 베이징=AFP 연합뉴스
金 51개 첫 종합우승… “漢-唐 전성시대로 돌아가자”

“동풍이 서풍 제압” 자신감 회복 가장 큰 수확

단결력 최고조… 국제사회 벌써부터 경계론

NYT “중국때문에 놀라게 될 일 많아질 것”

《중국이 8일 베이징(北京) 올림픽 주경기장(냐오차오·鳥巢·새 둥지라는 뜻) 개막식에서 전 세계에 사실상 ‘예고’했던 중화의 부활이 사상 첫 올림픽 종합 우승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번 올림픽이 중국인들에게 주는 가장 큰 의미는 자신감의 회복이다. 올림픽은 올해 3월 말부터 시작된 올림픽 성화 봉송과 5월 쓰촨(四川) 대지진 복구 과정에서 촉발된 중화 민족으로서의 자각과 단결심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있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도 1일 외신기자들과의 회견에서 “올림픽이 중국에 남긴 귀중한 유산 중 하나는 단결의 경험”이라고 말했다.

높아진 단결심은 그동안 급속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불거진 불균형 성장의 파열음을 줄여 국가적 역량을 키우는 작용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자부심으로 중국은 국제사회에 더욱 당당히 나설 것으로 보인다.

○ 서양침탈에 억눌렸던 열패감 날려버려

“한당(漢唐)으로 돌아가 다시 중화의 문화가 넘치는 성세를 읊고 싶다. 길이 멀고 험난한 것을 두려워하랴. 보아라, 우리는 화샤(華夏·중화의 뜻)의 자손인 것을….”

지난해 말 중국 국영 CCTV에서 올림픽 개최를 기념해 발표한 ‘다시 한당으로 돌아가자(重回漢唐)’는 노래의 일부다.

한때 세계 문명을 주도했으나 근대화에 뒤처지면서 19세기 이후 서양의 침탈에 눌려 왔던 중국. ‘늙은 거인’으로 조롱받았던 그 중국이 올해로 30년을 맞는 개혁 개방의 성과를 바탕으로 그 열패감을 날려버리고 있다.

1950년대 마오쩌둥(毛澤東)은 “동풍이 서풍을 제압한다”며 중국식 사회주의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낸 바 있다. 그런데 이제 반세기가 지난 뒤 ‘중국식 동풍’이 서풍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 씨는 최근 칼럼에서 중국 올림픽 우승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중국이 올림픽에서 미국을 제쳐 우리를 놀라게 했다. 지금은 체육 분야지만 앞으로는 예술 과학 교육 경제 등 분야에서 중국에 놀라게 될 것이다. 세계는 미국과 유럽이 주도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지만 앞으로는 (중국이 세계를 놀라게 하는) 이런 상황에도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 기초과학 분야 무섭게 성장

경제 성장이나 올림픽 우승과 같은 현실화된 중국의 파워 외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중화의 부활을 예고하는 것이 기초과학의 급성장이다.

노벨상을 수상한 중국인 과학자는 핵물리학의 리위안저(李遠哲) 등 3명이다. 중국 최고의 이공계 대학 칭화(淸華)대에는 ‘노벨반’이 운영되고 있다.

각국의 기초과학 수준을 알려주는 과학논문인용색인(SCI) 논문 수도 중국은 2006년 5만8473편으로 미국 영국 일본 독일에 이어 5위를 차지했으며 차츰 순위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풍부한 생물자원을 바탕으로 생명공학 분야에 연구를 집중하고 있다.

한중과학기술협력센터장인 홍성범 박사는 “중국은 국가적인 지원하에 바이오에너지 개발, 신약 개발 등을 진행하고 있다”며 “기초과학 분야에서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저력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 분야에서도 중국의 성장세는 무섭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만 해도 신규 단원을 모집하면 절반 이상은 중국인이다. 미술계에서도 중국 작가들의 작품은 천문학적인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 부활하는 중화에 대한 경계도 높아져

서방의 한 중국 전문가는 ‘중국의 우위(Chinese dominance)’로 가는 과정에서 진통도 따를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100여 년간 서구 열강의 침략을 겪으면서 당한 ‘국치(國恥) 의식’이 중국이 세계를 보는 프리즘이 돼 ‘과민성 민족주의’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중국의 시사주간 ‘중국신문주간’도 “국제사회가 중국의 강성을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중국인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중국이 추구하는 중화의 부활은 결국 국제질서의 재편을 불러와 파열음을 일으킬 것이란 예상도 있다. 구소련 붕괴 이후 초강대국 위치를 독점해 온 미국에선 이미 정치권을 중심으로 중국경계론이 내려진 상태다.

중국의 정보기관들은 더더욱 공격적으로 미국 정부 및 기업 등을 겨냥한 첩보수집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중국군도 미군의 압도적 군사적 우위에 대응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 등이 중국경계론의 배경이다.

중국의 움직임 중에는 우주 무기나 미국의 항모 전단을 위협할 수도 있는 사이버 전쟁 기술 개발 등도 포함되어 있다고 미국은 보고 있다.

하지만 정재호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는 “중국이 부상한 후 곧바로 미국과 패권 경쟁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은 현재로서는 단언할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는 등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편입하려고 줄곧 노력했다”며 “중국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미국과의 협력이 가장 필요하고 미국과 마찰을 일으키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베이징 올림픽을 평가한 세계의 눈

“성공적 개최 금메달감” 극찬

“인권 외침은 틀어막아” 일침

불참 거론 서구 정상들 “성대하고 훌륭” 치켜세워

시민 매너에도 후한 점수… 인권-환경문제 옥의 티▼

‘인권이나 환경오염 문제는 스포츠와 메달에 가려 뒷전으로 밀려났다. 베이징 올림픽은 중국의 힘과 현대성, 자금력을 절묘하게 펼쳐낸 전시장이었다.’(로이터통신)

24일 화려한 불꽃놀이와 함께 대단원의 막을 내린 베이징 올림픽에 대해 외신과 각국의 주요 인사들은 “인권 등 여러 논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 “잘 마무리된 역사적 게임”

로이터통신은 이날 “베이징 올림픽은 중국인들의 새로운 자신감을 보여준 행사”라며 “중국인들은 중국이 올림픽 게임에서 이뤄낸 성과에 애국심과 자긍심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또 “외국인 관광객들은 중국인의 따뜻한 환대와 달라진 매너, 국제적이고 세련된 도시의 모습에 놀라움을 표시했다”고 전했다.

미국의 시카고트리뷴도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진행됐다”고 평가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도 “세계가 중국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인권, 환경문제 등에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해온 파이낸셜타임스는 차분하게 경기 기록과 선수들의 스토리를 종합 정리했다.

올림픽이 시작되기 전 개막식 불참 가능성까지 거론하던 서구 정상들의 반응도 달라졌다.

차기 개최국인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자리에서 “중국 정부와 인민들이 성대하고 훌륭한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내 세계인의 꿈을 실현시켰다”고 치켜세웠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중국은 올림픽 준비라는 종목에서 금메달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독일 외무부는 부대변인을 통해 “이번 올림픽은 중국을 크게 발전시켰으며 향후 중국사회를 더 개방하고 근대화를 촉진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올림픽 관계자들도 대회 결과에 크게 만족하는 모습이다.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폐막식 직전 기자회견에서 “흠잡을 데 없다”고 극찬했다. 수영선수 마이클 펠프스와 육상선수 우사인 볼트 같은 스타의 등장과 함께 신기록이 쏟아진 올림픽이었다는 점에서 베이징 올림픽은 성공적이라는 것.

다만 그는 인권문제 같은 경기 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주권 국가에 변화를 강요할 수 없다”며 대답을 회피했다.

2012년 올림픽 개최국인 영국의 세바스천 코 올림픽 조직위원장도 AFP통신에 “엄청난 자본을 투입한 것으로 세계인의 눈에 각인된 베이징 올림픽과 같은 방식의 올림픽은 이제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 해결되지 않은 과제들

그렇다고 올림픽의 성공이 중국의 발목을 잡아온 문제들을 단기에 해결해 준 것은 아니다.

언론들은 중국 ‘올림픽 외교’의 성공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인권 탄압과 환경오염 같은 문제점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라는 언급을 잊지 않았다.

휴먼라이츠워치 등 국제 인권단체들도 중국 공안당국이 시위 허가신청을 냈던 70대 할머니들을 처벌한 사실을 거론하며 비판 수위를 높였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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