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러시아 ‘인종 섬’들 ‘분리독립’ 다시 꿈틀

  • 입력 2008년 8월 27일 02시 56분


러, 압하지야 등 독립 인정후 “분쟁 해결 호기” 부추겨

美 “국제법 위반… 對러관계 재검토” 경고

체첸 - 다게스탄共 등 러시아도 불똥 우려

옛 소련 붕괴 직후 극심한 유혈사태를 겪었던 러시아 서쪽의 ‘인종 섬(ethnic enclave)’들이 또다시 분리독립 문제로 들썩이고 있다. 러시아가 그루지야 전쟁을 계기로 친러시아 성향의 독립국가 수립에 힘을 실어주는 기류가 감지되면서부터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25일 “지금이 트란스드네스트르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러시아 의회가 그루지야 내 남(南)오세티야와 압하지야의 독립 찬성안을 의결한 직후였다.

몰도바 내 자치지역인 트란스드네스트르는 우크라이나와 몰도바로 둘러싸인 인종 섬으로 러시아 우크라이나 루마니아가 흡수 병합을 다투는 곳.

1992년 3월 몰도바 정부군과 분리주의자의 유혈전투 이후 보리스 옐친 당시 러시아 대통령의 중재로 자치권을 얻었지만 국제적으로 독립국가로 승인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이번 그루지야 전쟁을 계기로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에 이어 이곳도 친(親)러시아 성향의 독립국가로 바꾸겠다고 나선 것이다.

러시아 민족주의 세력이 또 다른 분리독립 대상 지역으로 꼽고 있는 인종 섬은 아제르바이잔 영토에 둘러싸인 나고르노카라바흐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

그리스 정교를 신봉하는 아르메니아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나고르노카라바흐는 1993년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분리주의자와 아제르바이잔 정부군의 전쟁으로 3만여 명의 사상자를 낸 지역이다.

이들 지역은 1990년대 소련 붕괴 뒤 내전을 거쳐 주변국과 평화협정을 맺은 이후엔 국제사회의 주목을 크게 받지 못했다.

러시아 전문가들은 이들 지역이 그루지야 전쟁 이후 러시아의 후원을 업고 분리독립 문제를 전면적으로 제기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지적한다. 미국과 유럽은 이미 “인종 섬 분리독립이 국제법을 위반할 뿐만 아니라 동유럽의 안보를 저해한다”고 밝힌 상태여서 충돌이 예상된다.

미국은 25일 러시아 의회가 그루지야 내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 공화국의 독립 인정 결의안을 채택한 직후 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토니 브래토 백악관 부대변인은 미 텍사스 주 크로퍼드에서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 공화국의 운명은 어느 한 국가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며 “두 자치공화국 주민과 그루지야, 유엔 등 관련 당사자들의 평화적인 협상과 토론을 통해 결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러시아가 그루지야 사태와 관련된 휴전협정을 여전히 지키지 않고 있다”고 비난한 뒤 “미국은 러시아와의 ‘전반적인 관계’를 재검토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는 이런 미국의 경고에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26일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에 대한 독립을 공식 인정한다는 명령서에 서명한 뒤 “새로운 냉전 시대가 오는 것을 원하지는 않지만, 신(新)냉전이 두렵지 않으며 어떤 것에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러시아의 이런 움직임이 자칫하면 러시아의 안정을 해치는 방향으로 튈 가능성도 있다. 러시아로부터 떨어져 나가기를 원하는 인종 섬이 러시아에도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 분리주의 세력의 테러가 끊이지 않는 북(北)캅카스 지역의 체첸과 다게스탄공화국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인종 독립 국면이 고조되면 그 불똥이 러시아 내부에도 튈 수 있다는 얘기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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