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어 “21세기에 中없이 제대로 할수있는 건 없다”
美, 2006년 전략경제대화 등 긴밀한 파트너십 구축
《“중국이 참여하지 않으면 21세기에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기후변화에서 안보, 경제 등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파트너십이 꼭 필요하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26일 월스트리트저널에 이런 내용의 칼럼을 실었다. 베이징(北京) 올림픽을 보고 느낀 중국의 변화를 언급하면서 “중국은 이제 세계가 직면한 도전들에 대응할 핵심 플레이어”라고 강조했다. 베이징 올림픽이 끝난 뒤 국제사회의 관심은 이른바 ‘중국 끌어들이기(China Engagement)’에 쏠리고 있다. 중국이 세계무대의 ‘당당한 주역’이라는 사실을 선언한 만큼 글로벌 문제에도 책임을 지라는 요구다.》
○ “글로벌 문제 함께 풀자”
중국은 그동안 인권 탄압과 환경 오염, 무역 불균형, 지적재산권 침해 등 여러 이슈에서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아왔다.
그때마다 중국은 “아직 여력이 없다” “준비가 안 됐다”는 식으로 책임을 피해 왔다. 오랜 기간 외세에 시달렸던 피해의식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들도 중국을 껴안기보다는 비판이나 배척의 대상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강했다. 하지만 주요 현안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급속히 커지자 중국을 문제해결의 장으로 끌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북핵 문제 논의 과정 등에서 보여준 중국의 외교력은 국제사회 분쟁 해결에 중국의 역할이 필수적임을 잘 보여준다.
평양에 대해 실질적 영향력을 가진 나라로 평가받는 중국은 북한 외무성이 26일 핵 불능화 중단과 원상복구를 고려한다고 밝힌 직후 “건설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단 다르푸르에서의 인종청소 등의 사태에서 나타난 중국의 ‘비협조’ 또한 역설적으로 중국 역할의 중요성을 각인시켰다. 중국은 안정적 원유 확보를 위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수단 제재 움직임을 반대해 국제사회를 좌절시켰다.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에 부닥친 중국이 결국 수단정부를 압박해 유엔 평화유지군이 주둔할 수 있게 했지만 중국은 여전히 수단 정부를 옹호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베이징 올림픽 참석 직전 워싱턴포스트와 가진 인터뷰에서 “중국을 (국제사회에) 참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헨리 폴슨 재무장관은 최근 정치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에서 “중국의 성장과 글로벌 경제가 갖는 상호연관성은 국제 시스템에 중국을 끌어들이는 정책을 요구한다”고 역설했다.
이런 요구는 최근 글로벌 경기침체 속 고유가와 인플레이션이 최대 현안으로 부상하면서 부쩍 늘었다. 중국의 지난해 에너지 소비량은 26억5000만 t으로 세계 2위. 중국이 세계의 각종 원자재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면서 글로벌 물가도 함께 춤을 췄다.
유가가 배럴당 140달러에 육박하던 지난달 일본 도야코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서 중국의 가입 여부가 논의된 것도 같은 맥락. 원인 제공자이자 동시에 해결의 주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중국을 배제하고는 논의의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 한걸음 떼기는 했지만…
미국이 중국과 2006년부터 진행해 온 전략경제대화(SED)는 중국을 끌어들이기 위한 대표적인 시도 중 하나다.
SED는 양국 수뇌부와 각료급의 빈번하고 긴밀한 대화를 가능케 했다. 대통령 취임 전 CNN의 래리 킹으로부터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차별화할 가장 중요한 정책 분야가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중국”이라고 답했던 부시 대통령의 구상이 체계화된 것이 SED라 할 수 있을 정도다.
중국환경보호청(SEPA)은 지난해 12월 SED에서 오염물질 거래 프로그램을 논의한 뒤 일부 지역에서 시험적으로 진행하던 이 프로그램을 전국적으로 확대했다. 같은 해 6월에는 콩고분지의 삼림과 야생식물 보호를 위한 프로젝트(DBFP)에 미국과 공동 참여를 결정했다.
이처럼 중국도 국제사회 요구에 조금씩 응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가난한 나라를 지원하는 국제은행 산하 국제개발협회(IDA)에 처음으로 자금을 지원했다. 또 대표적 국유기업 중국석유해양공사(CNOOC)도 해외의 사회공헌 활동에 투자를 늘려가고 있지만 아직 부족하다는 게 대체적인 인식이다.
특히 인권분야는 올림픽을 준비한 8년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국내 표현의 자유 침해, 반체제 인사 탄압, 인터넷 접속 제한 등에 대한 인권단체의 잇따른 비난에도 중국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미 외교협회(CFR)의 엘리자베스 이코노미 이사는 “중국은 인권문제 해결에 능동적 역할을 해 달라는 국제사회의 요구를 외면함으로써 정치적으로 어려움을 자초한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 개방과 투명한 무역 거래, 무역불균형 및 인플레이션 현상 해소를 위한 환율 정책 등 경제 현안에 있어서도 중국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 등 주요국은 △위안화 절상 △반독점법 완화 △지적재산권 관련 규제 강화 △에너지 가격 상한정책 폐지 등의 요구사항을 구체화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中에 ‘풀뿌리 민주주의’ 등장?
광저우시, 고위간부 주민평가 첫 도입
“불만족” 50% 넘으면 강등-좌천 조치▼
중국이 ‘기층(基層·향이나 진 등 말단 행정단위 단계) 민주화’ 또는 당내 민주화 차원에서 향·진(鄕·鎭) 공산당 서기의 당원 선출제를 채택한 적은 있었지만 주민이 직접 당정(黨政) 간부의 평가에 참여하도록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런민일보는 27일 광저우 시가 최근 구와 현급 고위 간부에 대한 주민평가 도입을 뼈대로 한 인사평가 방안을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이 방안에 따르면 과거 경제성장 실적에 따라 좌우되던 당정 지도 간부에 대한 평가는 경제발전, 사회발전, 인민생활, 생태환경 등 4대 분야 41개 항목으로 나눠 골고루 평가에 반영한다. 경제발전 항목은 전체 비중의 30% 안팎.
항목 평가 가운데 지도부 단체 평가는 우수, 양호, 일반, 비교적 미흡의 4단계로 나뉜다. 개인 평가는 우수, 적합, 기본 적합, 부적합 등 4단계.
그러나 고위 간부의 승진과 좌천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당 대표와 인대(人民代表大會·지방의회) 대표, 정협(政協) 위원, 가·촌(街·村·중국의 최말단 행정단위) 간부, 군중 대표 등 5개 부문 대표가 20%의 같은 지분으로 결정하는 주민 만족도 조사.
이 조사에서 ‘만족’과 ‘비교적 만족’이 90% 이상이고 항목 평가에서 우수와 적합이 90% 이상이면 ‘우수’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주민 만족도 평가에서 ‘불만족’이 50%를 넘으면 항목 평가 내용과 상관없이 ‘부적합’ 평가를, 3분의 1을 넘으면 ‘기본 적합’ 평가를 받게 된다.
결국 아무리 실적이 좋아도 주민 만족도 조사에서 불만족이 많으면 ‘직무 부적합’ 간부로 평가받는 셈이다.
‘직무 부적합’ 판정을 받거나 2년 연속 ‘기본 적합’ 판정을 받으면 인사에서 강등 또는 좌천되며 1년간 발탁 인사에서 배제된다.
또 지도부 전체가 ‘비교적 미흡’ 평가를 받으면 전원 1년간 발탁 인사에서 배제되며 수평이동에서도 불이익을 받는다.
광저우 시 당교 양훙(梁宏) 부교수는 “주민 만족도 조사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과학발전관을 관철하고 민주화와 법치를 강화하기 위한 획기적 조치”라고 평가했다.
중국 공산당 중앙 당교 자오후지(趙虎吉) 교수는 “주민이 당정 간부를 직접 평가하도록 한 광저우 시의 이번 조치로 당정 간부들은 이제 주민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