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전체주의 비판 ‘파리 모임’에서 출발
獨 2차대전후 현실 접목 ‘라인강 기적’ 이뤄
80년대 ‘영국병’ 치유-美 장기호황 발판 마련
한편선 “미국 주도 경제패권 정당화” 비판도
신자유주의(neoliberalism)가 지난달 30일로 세상에 등장한 지 70년이 됐다.
신자유주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명멸하는 ‘학계의 조류(潮流)’에 그치지 않고 미국, 영국 등을 중심으로 현실 경제정책에 실제로 접목되면서 20세기 세계사를 바꾼 이론으로도 평가받는다.
독일 일간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이날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그의 신자유주의 동료들은 처음에는 공산주의 창시자인 19세기의 카를 마르크스처럼 조롱을 받았지만 결국 세상을 변화시켰다”고 평가했다.
○ 전체주의 비판모임으로 출발한 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는 1938년 8월 30일 프랑스 파리에서 결성된 ‘월터 리프먼 콜로키움’에서 출발했다. 당시 많은 국가가 대공황을 전후한 경제 혼란의 책임을 시장경제에 돌리고 계획경제로 향하면서, 자유주의는 수세에 몰린 상황이었다.
이 모임은 쇠퇴하던 자유주의의 이념을 되살리기 위한 것으로 그 이름을 전체주의 비판에 앞장선 미국 언론인 리프먼에게서 따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유럽 학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오스트리아 출신의 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그 모임에 참석했다.
프라이부르크 학파(질서자유주의자) 수장인 발터 오이켄 등 최초의 신자유주의자들은 19세기적 자유방임주의를 비판했다. 그들은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위협해 독점으로 이어지는 카르텔 등이 발생하는 이유가 자유방임주의에 기인한다고 생각했다.
“경제는 자율적이지는 못하다. 국가는 경제에서 경쟁이 가능하도록 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국가는 약해져야 하지만 이익집단에 놀아나지 않을 만큼은 강해야 한다”는 게 그들의 견해였다. 그들은 자유주의를 구하기 위해 ‘역사 속의 자유주의’와 결별을 감행했다.
○ 자유주의 재건한 하이에크와 프리드먼
신자유주의자들의 활동은 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중단됐다. 전후 이를 재건한 인물이 하이에크다. 새로운 모임은 ‘몽펠르랭학회’와 함께 시작됐다. 1947년 부활절 스위스 제네바 호숫가의 작은 산 몽펠르랭에 지식인 39명이 모였다. 그 속에 철학자 카를 포퍼와 시카고대에서 온 젊은 교수 밀턴 프리드먼이 있었다.
그들은 열흘 동안 당시의 정치 경제 위기에 대해 토론하고 자유주의적 세계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전략을 구상했다. 동유럽에서 공산주의의 확산뿐만 아니라 반(半)사회주의적인 서구 복지국가의 확산에 대해서도 불신을 표명했다.
조지프 슘페터는 “‘산 위의 경제학자’의 모험이 부질없는 일이 될 것”이라며 비웃었다. 오늘날에 와서 보면 그의 예측은 빗나갔다. 1974년 하이에크, 1976년 프리드먼을 필두로 지금까지 이 모임 회원 중 8명이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 현실과 접목한 신자유주의
첫 돌파구는 옛 서독에서 마련됐다. 1948년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경제장관은 가격과 생산 통제를 철폐하는 등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그는 몽펠르랭학회 회원이었다. 서독은 결국 라인 강의 기적을 이뤘다.
1960년대 들어 신자유주의는 자유방임주의 쪽에 다시 가까워졌다. 통화주의의 창설자인 프리드먼은 국가가 이익집단의 손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경쟁체제를 수호해야 한다는 국가의 능력을 믿지 않았다. 그렇다고 정부가 아무 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정부나 중앙은행이 시장 효율성을 저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통화정책에 개입하거나 소득이 일정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근로계층을 위한 세금우대 정책의 필요성도 주장했다.
1970년대 서구 선진국들이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상황에서 물가가 급등하는 현상)을 겪으면서 케인스 학파가 수세에 몰리자 신자유주의의 무대가 열렸다.
‘유럽의 병자’로 불리던 영국에서는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전 총리가,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신자유주의의 열렬한 옹호자였다. 특히 프리드먼의 경제정책은 두 사람의 ‘경제교과서’였다. 영국은 대처 전 총리의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이른바 ‘영국병’을 고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도 레이건 재임기간 재정적자 급증 등의 비판도 있지만 규제완화와 시장경제 정책을 과감히 추진해 이후 유례없는 장기호황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비판과 평가
최근 들어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신자유주의가 미국 주도 경제의 패권을 정당화하는 이론이라는 주장도 있다. 또 지난해 이후 미국에서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이후 신용경색이 확산되면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이념이 개인의 자유가 경제의 기반이 돼야 한다는 인식을 확산시켜 시장에 비해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한 것은 두고두고 평가를 받을 대목이라는 일반적인 평가다.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사회주의는 죽었지만 리바이어던(Leviathan·여기에선 국가를 의미)은 죽지 않았다’는 몽펠르랭학회 회원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뷰캐넌의 말을 전하면서 “신자유주의 혁명이 과장돼서는 안 되며, 국가의 후퇴는 말로만 그친 경우가 많다”고 평가했다.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