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노동자 대행진’에 앞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상원의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미국 언론들이 주목해온 순간이었다. 공화당 세라 페일린 부통령 후보가 예상치 않은 붐을 일으키고 있지만 힐러리 의원은 지난달 26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 후보에 대한 지지를 약속한 이래 계속 침묵을 지켜왔다. 힐러리 의원이 마침내 포문을 열 것이란 기대가 큰 상황이었다.》
하지만 힐러리 의원은 이날 공화당의 경제정책에 대해선 강력히 비판하면서도 ‘페일린’이란 단어는 단 한 번만 언급하는 데 그쳤다.
“내가 덴버에서 했던 발언을 약간 수정하겠습니다. 절대 어떤 경우에도 매케인은 안 됩니다, 페일린도 안 됩니다(No way, no how, no McCain, no Palin).”
사실 “No McCain, no Palin”이란 표현은 이미 4일 매케인 후보의 연설 직후 힐러리 캠프가 지지자들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보낸 것의 재탕이었다.
뉴욕데일리뉴스, 뉴욕선 등 현지 언론들은 힐러리 의원 대신 소매·도매업·백화점 노조 연합의 위원장이 “페일린이 자신을 힐러리에 비유하는 데 모욕감을 느낀다. 힐러리는 우리의 친구다. 페일린 당신은 힐러리 클린턴이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전했다.
힐러리 의원이 백인 여성층, 특히 힐러리 의원의 텃밭인 근로여성층의 표를 겨냥해 돌진해오는 ‘페일린 열풍’을 차단하는 최적의 무기라는 생각은 민주당 내에 널리 퍼져 있다.
민주당 전략가인 크리스 레한 씨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선거는 ‘월마트 맘’이 승패의 열쇠를 쥘 가능성이 크다”며 “클린턴 부부는 월마트 맘을 공화당이 잠식하는 걸 막아줄 수 있는 핵심 플레이어”라고 말했다. ‘월마트 맘’은 준(準)교외와 농촌에서 직장에 다니며 아이를 키우는 백인 여성을 뜻한다.
스윙스테이트(접전지역)인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주 등의 백인 근로계층도 힐러리 의원이 지켜줘야 하는 지지층이다.
하지만 힐러리 의원 측근들은 “힐러리는 공화당의 첫 여성 부통령 후보, 더구나 신진 정치인 개인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대리전의 전사(戰士)’ 역할을 내켜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힐러리 의원으로선 2012년을 노리고 있어 이미지 훼손을 조심해야 한다. 게다가 힐러리 캠프의 경선자금 빚 청산 문제도 풀리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동시에 만약 오바마 후보가 대선에서 패배해도 “힐러리가 적극적으로 돕지 않아 졌다”는 말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노동자, 중하층 서민을 대변하는 ‘진보적 정치인’을 표방하는 힐러리 의원으로선 페일린 후보의 강경 보수 성향을 못 본 척하기도 어렵다.
힐러리 의원은 8일 플로리다 주에서 첫 본격 지원유세를 벌인다. 캐슬린 시벨리우스 캔자스 주지사, 재닛 나폴리타노 애리조나 주지사 등 민주당 소속 여성 지도자들도 총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