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마르크스와 완전히 다른 식으로 자본주의를 보게 된 것은 조지프 슘페터 덕분이다. 슘페터에 따르면 위기와 그에 따른 파괴는 자본주의의 본질이다.
‘창조적 파괴’의 좋은 사례는 철도다. 철로가 처음 개설됐을 때 투자가들은 앞 다퉈 철도회사 주식을 샀다. 거래는 투기적 양상을 보였다. 결국 주가는 폭락하고 많은 투자가가 재산을 잃었다. 그러나 산업혁명의 가장 강력한 혁신 중 하나인 철도는 그대로 남았다.
정보기술(IT) 거품에 대해서도 같은 얘기를 할 수 있다. 많은 투자가가 재산을 잃었지만 그때 구축된 강력한 네트워크는 그대로 남아 있다.
시장은 위기를 통해 알맹이와 쭉정이를 구별한다. 슘페터 이후 가장 위대한 시장 이론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표현했듯이 경쟁은 ‘발견절차(Entdeckungsverfahren)’의 역할을 수행한다.
투자는 과잉이 되기 쉽다. 거품이 커져 결국 터지고 만다. 1920년대 장기간 지속된 경제 성장의 믿음이 미국 투자가들을 주식시장으로 내몰았고 1929년 주가 대폭락으로 이어졌다. 아시아 신흥국의 성장에 따른 장밋빛 투자는 1997년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은 왜 1930년대 세계 경제는 깊고 오랜 침체기를 겪은 반면 위기를 겪었던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빨리 원기를 회복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해답은 국가의 상이한 반응에 있다. 1930년대 대부분의 국가는 강력한 시장 규제에서 치료방법을 찾았다. 국가가 거래를 제한하고 가격과 생산을 통제했다. 미국은 뉴딜 정책을 통해 경제의 상당 부분을 국가로 흡수했다. 케인스학파들은 뉴딜정책이 미국을 수렁에서 구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민간부문이 활력을 잃으면서 미국 실업률이 1936년까지도 15%를 넘어섰다는 점에 눈을 감아선 안 된다.
반면 아시아 국가들은 달랐다. 일부 국가는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에는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해 부실 은행을 국유화했다. 그런데 급한 불을 끈 뒤엔 정부 개입을 자제했다. 변동환율제를 도입했고 민간영역을 확대했다. 시장은 무대를 찾았고 성장력은 급속히 회복됐다.
모든 위기는 시장의 실패만도 아니고 국가의 실패만도 아니다. 위기에는 두 가지가 늘 섞여 있다. 오늘날 미국발 금융위기는 월가의 탐욕, 그들 스스로가 통제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진 복잡한 금융상품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2001년 이후 저금리 정책을 취한 국가의 잘못된 자극이 큰 역할을 했다. 게다가 1998년 정부가 헤지펀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구제에 관여한 것이 잘못된 선례를 만들었다. 모럴 해저드에 빠진 은행들이 저금리로 막대한 돈을 빌려 위험한 투자를 했다.
주택시장 활성화도 정치적으로 추진된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자기 집을’이란 구호는 미국의 국책 주택대출보증업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선전구호였다.
지금 미국 정부는 금융위기에 대처하면서 사실상 은행권의 거의 절반을 국영화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와 함께 경쟁도 제한받게 됐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스스로 위기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과거의 사례에서 보듯 국가의 과도한 개입은 종종 잘못된 결과를 빚었다.
송평인 파리 특파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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