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계에서 300년 만에 가톨릭 신자의 왕위 계승을 허용하도록 법을 개정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25일 보도했다.
새 왕위계승법 개정안에는 남성이 우선적으로 왕위에 오르도록 한 규정의 폐지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영국 왕의 정치 자문기관으로 1536년 설립된 추밀원의 권한을 축소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크리스 브라이언트 노동당 하원의원은 이 같은 내용을 이번 주 맨체스터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발표했다. 고든 브라운 총리의 헌법 개정 자문을 맡은 윌프 스티븐슨 씨도 초안 마련 작업에 참여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영국은 1688년 명예혁명 이후 발표된 권리장전에서 가톨릭 신자의 왕위 계승을 금지했다. 당시 튜더 왕조와 스튜어트 왕조에서 성공회와 가톨릭 신자 국왕이 번갈아 왕위에 오른 뒤 종교탄압이 지속돼 국정 혼란이 야기됐기 때문.
이 법에 따르면 본인이 성공회 신자일지라도 배우자가 가톨릭을 믿으면 서열에 관계없이 국왕이 될 수 없다. 왕위 계승자는 의회에서 가톨릭 거부 선언을 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300년 만에 가톨릭 신자에게 왕위 계승 자격이 부여되고 윌리엄 왕세손이 첫째 아이로 딸을 낳더라도 그 딸이 남자 동생들을 제치고 여왕이 될 수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영국 정계에선 또 반(反)가톨릭 정서로 명예혁명 이후 역대 총리 가운데 가톨릭 신자가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물러난 뒤 가톨릭으로 개종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가디언은 그동안 왕위계승법 조항들이 시대에 뒤떨어진 종교, 성차별적 내용을 담고 있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2000년에도 가디언이 왕위계승법이 인권을 침해한다며 개헌 운동을 벌였으나 성과를 내지 못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영국 왕위계승 순위 11번 피터 필립스 결혼식(5월17일)<동영상 제공: 로이터/동아닷컴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