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올림픽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사건이다. 중국이 비록 패권을 장악한 초강대국은 아닐지라도 미국 패권시대 이후 우세한 문명의 하나로서 세계사의 주역으로 부상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정비젠(鄭必堅) 전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부교장도 중국학 세계 포럼에 참석했다. 중국의 ‘평화로운 부상’에 관한 책을 쓴 그는 중국이 지난 30년간의 개혁개방을 통해 아편전쟁(1840∼1842년) 이후 시작된 서구 종속으로부터 마침내 탈피했다고 본다.
이런 중국의 성공은 덩샤오핑(鄧小平)의 실사구시(實事求是) 철학이 평화적으로 발전하는 사회주의 건설에 기여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서구의 ‘갈등과 지배’ 모델이 아닌 제3의 방식을 세계에 제시하는 것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다시 깨어난 중국은 세계화와 근대화를 외면한 채 문을 걸어 잠그지 않을 것이고 자만해 우쭐대지도 않을 것이라고 정 씨는 말한다. 또 새로운 중국은 서구에 대한 의존을 과소평가하지 않을 것이지만 스스로 독립적인 주도권을 행사하게 될 것이라고 그는 믿는다.
새로운 중국은 서구 열강이 걸었던 길과는 다른 길을 택할 것이라고 중국학자들은 보고 있다. 즉 식민주의 정책을 통해 세계의 자원을 약탈하지도, 독일 일본처럼 세계질서를 재편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지도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정 씨는 “새로운 중국은 세계가 함께 발전하는 공생을 위해 세계 각국과 열린, 그리고 조화로운 관계를 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이징대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장샹룽(張祥龍) 씨는 ‘문명의 충돌’과 ‘역사의 종말’이라는 서구 이론은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나 마르크스의 발전 법칙 등 보편적 적용 기준을 제시하는 보편주의 문명끼리 충돌할 때만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유교와 같은 비(非)보편주의 문화가 만나면 마찰은 있을지언정 상호 공멸을 목표로 하는 전면전을 피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실제로 불교와 도교는 중국에서 수천 년 동안 공존했다는 것이다.
자와할랄 네루대학의 동아시아학센터장을 지낸 탄중(譚中) 씨는 이번 베이징 올림픽은 중국이 세계에 데뷔하는 자리이자 유교의 감수성을 알린 행사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중국은 다른 강대국처럼 영토 정복을 통해서 국력을 최대화하는 데는 큰 관심이 없다.
“중국과 인도는 5000년간 공존해 왔습니다. 양국 관계가 훼손된 것은 1958∼78년 20년으로 당시는 양국이 서구 민족주의의 영향을 받았던 때입니다. 서구에는 바빌로니아 이집트 그리스 로마 같은 훌륭한 고대 문명이 있었지만 후세에 전해지지 못하고 폐허가 됐습니다. 서구의 지정학적 패러다임은 서로 영토 다툼을 하고 상호 파멸로 빠져들게 하지만 동양의 지리·문명학적 패러다임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이 동양과 서양의 근본적 차이입니다.”
물론 유교적인 중국의 영향력이 서구 가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중국 측의 주장을 마냥 순진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그리고 유교적 권위의 행사는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에서 보듯 강압적으로 내부의 조화를 이루려는 방식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서구가 부활한 중국의 자화상 뒤에 놓인 심오한 문명의 추진력을 무시한다면 이 또한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중국의 추진력은 베이징 올림픽 이후 자신감이 넘쳐나는 중국인들의 얼굴에서 찾을 수 있다.
나탄 가델스 글로벌뷰포인트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