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심규선]한일 정상이 함께 강강술래를

  • 입력 2008년 10월 2일 02시 59분


한복, 농악대복, 핫피, 하카마, 무대드레스, 평상복…. 각양각색의 옷을 입은 수백 명의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강강술래’의 노랫소리에 맞춰 흥겹게 잔디밭을 돈다. 처음엔 몇 군데서 조그만 원을 만들어 춤을 추던 사람들이 나중엔 자연스럽게 하나가 된다. 커다란 인간띠가 서울광장 안쪽을 전부 둘러싼다. 그들은 겅중겅중 뛰며 ‘가∼앙강 수∼울래’를 합창한다.

지난 일요일 저녁 서울광장의 모습이다. 서울광장과 청계광장에서 이틀간 열린 올해 한일축제한마당은 그렇게 끝이 났다. 공연자만 두 나라에서 51개 단체 1100여 명에 이르고, 프로그램만 73개나 되는 큰 행사가 막을 내린 것이다.

조바심 속에 끝난 한일축제한마당

강강술래의 노랫소리도 잦아들고 조명도 꺼졌지만 광장 곳곳에서는 참가단체별로 아쉬움을 달래는 조촐한 뒤풀이가 이어졌다. 재일동포와 일본인이 회원인 ‘하나코리아’라는 단체의 회원 중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유독 많았다. 서로 껴안은 채 ‘내년에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며.

이 행사는 올해로 네 번째다. 요즘 한일 간에 문화교류가 적지 않지만 이 행사처럼 장시간, 대규모로 치러지는 행사는 없다. 2005년 한일국교정상화 40주년을 기념해 양국 정부 주도로 시작됐다. 해마다 ‘별 탈 없이’ 끝나곤 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 행사 때마다 고비가 있었다. 첫해도 서울광장에서 열려고 했다. 그러나 일본 시마네 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만들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결국 대학로에서 행사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다음 해부터는 정부가 뒤로 물러났다. 뜻있는 행사를 한 번으로 끝낼 수야 없지 않느냐는 의견이 나왔다. 양국의 지식인들이 실행위원회, 지원위원회 등을 만들어 부지런히 뛰어다녔다. 기업과 정부기관의 도움을 얻어내 지금은 민간 주도로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올해도 순탄치가 않았다. 일본이 중학 교과서 해설서에 독도를 자국 영토로 기술하는 바람에 양국 관계는 또다시 얼어붙었다. 주최 측은 여느냐 마느냐를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이럴 때일수록 교류는 계속돼야 한다고.

‘축제’를 벌이며 가슴을 졸여야 하는 것은 한일관계가 껄끄러워지면 한국 속의 일본인의 어깨가 그만큼 좁아지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일축제한마당에 관여해온 오구라 기조(小倉紀藏) 교토대 교수는 그런 분위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자신의 입장에서 한국인의 태도를 지켜봤듯이, 한국인도 단순한 호기심에서, 한국보다 하등(下等)의 문화를 보아준다는 태도로, 일본 문화가 아니라 그저 ‘문화’를 본다는, 제각각의 생각으로 이 축제를 보았을 것이고 자신은 그런 각양각색의 한국인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것이다(‘자 놀아보세-다문화이해를 위한 한일축제’). 오구라 교수의 얘기는 이 축제는 ‘같음’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다름’을 보여주는 데 의미가 있으며,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축제는 계속돼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그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이 축제에도 약간의 변화를 줄 필요성을 느낀다. 우선은 꼭 서울만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서울의 상징성이 있긴 하지만 가끔은 지방 대도시에서 열어도 좋을 것 같다. 요즘 두 나라의 지방 간 교류도 활발하다. 상대적으로 일본 문화를 접해 본 적이 적은 분위기를 잘만 활용하면 오히려 지방에서 더 큰 호응을 얻을 수도 있다.

문화로 손잡으면 우정은 오래간다

아니면 격년으로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행사를 여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가까운 나라라고는 하지만 역시 ‘이국의 풍물’은 관심을 끌기 마련이다. 일본 도쿄의 히비야 공원이나 우에노 공원 같은 데서 한국의 사물놀이나 탈춤 공연이 벌어지면 충분히 일본인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다.

더 욕심을 내자면 양국 정상이 한 번쯤 이 행사에 참석하길 기대해 본다. 두 나라 간에는 셔틀외교라는 것이 있다. 내년 이맘때쯤 한일축제한마당에서 한국의 대통령과 일본 총리가 손을 맞잡고 강강술래를 추는 것을 상상해본다. 말로만 우호를 외치는 것보다, 앉아서 선언문에 사인을 하는 것보다 수십 배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심규선 편집국 부국장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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