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그늘’ 인도 발목잡나

  • 입력 2008년 10월 2일 03시 26분


시위 진압장비를 갖춘 인도 경찰들이 지난달 26일 서벵골 주 싱구르의 나노 자동차 생산 공장 건설 현장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농사를 지어온 농민들이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거센 시위를 벌이면서 공장 건설은 지난달 초부터 중단됐다. 싱구르=로이터 연합뉴스
시위 진압장비를 갖춘 인도 경찰들이 지난달 26일 서벵골 주 싱구르의 나노 자동차 생산 공장 건설 현장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농사를 지어온 농민들이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거센 시위를 벌이면서 공장 건설은 지난달 초부터 중단됐다. 싱구르=로이터 연합뉴스
경제발전서 소외된 농민-노동자, 공장건설-특구설립 잇단 제동

급속한 경제발전 속에서 소외된 농민과 노동자의 반발이 인도 사회의 주요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규모 공장 건설이나 경제특구 설립 때문에 농지를 잃은 농민들은 시위를 통해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인도 경제는 연 9%대의 높은 성장률을 이어왔지만 인구의 약 70%를 차지하는 농민들은 혜택을 받지 못한 채 유일한 생계수단마저 뺏기고 있는 형편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최저가 자동차로 관심을 모았던 타타그룹의 ‘나노’ 생산 공장 건설이 중단된 것이다. 서벵골 주 정부가 나노 공장 건설을 위해 약 10km²의 농지를 수용하자 농민들이 “농지를 잃으면 생계를 이을 수 없다”며 반발한 때문이다. 주 정부는 토지보상비를 50% 올려주고 직업 교육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했지만 농민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타타그룹은 농민들의 시위가 격화되자 지난달 초 공장 건설을 중단했다. AFP통신은 “주 정부는 타타그룹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양측의 협상은 원활하지 않다”며 타타그룹이 지난달 24일부터 건설 중인 공장에서 설비를 빼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오리사 주에서 진행 중인 포스코의 제철소 건설 프로젝트도 토지 수용을 거부하는 농민들이 3년째 시위를 벌이면서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인도 대법원은 최근 토지 용도변경 신청을 승인했지만 시위는 중단되지 않고 있다.

경제특구 설립에 반대하는 시위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서벵골 주 케주리에서는 경제특구에 반대하는 농민들이 죽창과 망치를 들고 시위에 나서 ‘작은 내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전했다. 고아 주도 3곳에 경제특구를 세우는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농민들의 거센 반대로 진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문제의 핵심은 농민들에게 얼마나 보상을 해줄 것이냐가 아니라 ‘새로운 경제’에 농민들을 어떻게 준비시킬 것인가 하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인도지부 분석가인 수비르 고칸 씨는 “보상을 많이 해준다면 농민들이 토지에 대한 애착을 포기할 수는 있다. 하지만 땅을 팔고 난 뒤 농민들은 할 일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와중에 지난달 22일에는 해고된 노동자들이 회사 대표를 살해하는 사건까지 일어나 충격을 주고 있다. 뉴델리 외곽에 위치한 이탈리아의 변속기 생산업체 인도법인에서 해고 노동자 100여 명이 이 회사 최고경영자(CEO)를 집단 폭행해 숨지게 한 것. 이들은 복직 문제를 놓고 CEO와 협상을 벌이다 말다툼 끝에 폭력을 휘두른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더 타임스는 “경제발전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수억 명의 인도인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분노가 퍼져 있다는 점을 인도 정부도 인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농민과 노동자의 반발은 인도의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AFP통신은 “CEO 피살 사건은 여전히 농업 중심 사회인 인도에서 기업을 경영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보여 준다”며 외국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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