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홍규덕]비자면제, 한미관계 새 출발점

  • 입력 2008년 10월 20일 02시 56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17일 백악관에서 발표한 비자 면제 프로그램의 신규 가입국 명단에 한국을 포함시킴으로써 우리 국민의 숙원인 무비자 미국 여행이 가능하게 됐다. 물론 90일 이내의 단기 방문에만 해당되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부시 대통령 임기 내 미국의 가장 든든한 우방 역할을 했던 폴란드가 이번 면제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지만 한국은 동유럽 6개 국가와 함께 34개 면제 국가의 일원이 됐다.

건국 60년 만에 변화의 계기

까다로운 비자 신청 과정은 그동안 우리 국민에게 심리적으로나 정서적인 측면에서 많은 불편을 주었다. 미국 대사관의 문턱이 유난히 높다 보니, 비자 신청과 관련하여 불쾌한 경험이나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한두 개쯤 갖고 사는 것이 우리 국민의 공통된 경험이었을 것이다.

미국 영사가 묻는 질문을 긴장 속에 답해야 하고, 서류가 부족하거나 대답을 잘 못할 경우 영락없이 낙방하게 된다. 일단 떨어지거나 거부되면 미국에 다시 입국하기란 불가능했고 자연히 불만이 누적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불편함의 근원은 결국 우리의 삶 속에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생활수준이나 삶의 여건이 우리보다 좋다 보니 방문자 중 불법 체류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우리의 생활수준도 높아졌고 오히려 미국 생활이 불편하다는 얘기를 듣게 될 정도로 세상이 변했다. 비자 면제 협정의 발효는 양국 관계의 편견이나 오해, 심리적 위축감을 상쇄시켜 줄 수 있다. 비록 작은 일이지만 건국 60주년을 기념하는 해에 변화의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다행스럽다.

금년 4월 이명박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이 캠프 데이비드에서 21세기 전략동맹을 선언한 이래 양국은 신뢰를 다지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전개해 왔다. 쇠고기 사태가 터졌을 때도 파문을 최소화하기 위한 양국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문제 해결에 상당 부분 기여했다. 또한 북한의 비핵화 과정에서도 오해의 소지가 많았지만 한목소리를 내기 위해 양측 모두 많은 노력을 해왔다. 비록 자유무역협정(FTA)의 연내 비준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비자 면제를 위한 공식 발표가 금년을 넘기지 않고 처리됐다는 점은 더 나은 한미 관계를 위해 분명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21세기 한미전략동맹의 핵심은 군사동맹을 포괄적인 동맹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즉 군사 분야에 치중했던 한미 관계를 경제, 사회, 더 나아가 문화적 차원으로 확대하자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말을 완벽하게 구사하고, 충남 예산에서 교편생활을 했던 심은경이란 우리 이름을 가진 여성 대사가 부임했다는 점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호혜적이고 대등한 관계로

특히 내년부터는 한국의 대학생이 5000명까지 미국에서 1년 반 동안 일하고 영어를 배우며 여행까지 할 수 있는 문화교류 프로그램(WEST)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 비자 면제는 더욱 호혜적이고 대등한 양국 관계를 만드는 상징적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르면 다음 달부터 가능하다고 하니 이제 미국 대사관 앞에서 비자를 받기 위해 장사진을 치는 진풍경은 더는 볼 수 없게 될지 모르겠다.

이는 미국인의 입장에서도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한국 관광객 확대가 미국 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며, 불필요하게 확대된 반미감정의 예봉을 차단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제도를 잘 관리할 책임도 적지 않다. 교류가 확대되다 보면 자연히 각종 법률을 위반하는 사례도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재외국민 보호는 물론 모처럼 만들어진 기회가 남용되지 않도록 철저한 준비를 갖춰야 한다.

홍규덕 숙명여대 교수·사회과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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