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출 내집마련… 잔치는 끝났다”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10월 24일 02시 56분



은행 국유화… 고물가… ‘한숨’이 뒹구는 거리 22일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 시내에 있는 이 나라 최대 은행 카우프싱의 현금인출기 앞으로 한 청년이 쓸쓸히 지나가고 있다. 카우프싱을 비롯한 아이슬란드 3대 은행이 파산 위기를 겪고 국유화된 이후 시내에는 찬바람이 불고 있다. 레이캬비크=송평인 특파원
은행 국유화… 고물가… ‘한숨’이 뒹구는 거리 22일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 시내에 있는 이 나라 최대 은행 카우프싱의 현금인출기 앞으로 한 청년이 쓸쓸히 지나가고 있다. 카우프싱을 비롯한 아이슬란드 3대 은행이 파산 위기를 겪고 국유화된 이후 시내에는 찬바람이 불고 있다. 레이캬비크=송평인 특파원
국가부도위기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를 가다
집값 급락 - 대출이자 급등에 서민들 망연자실
“오랫동안 분에 넘치는 생활… 이제 고통의 시작”


사실상 국가 부도가 초읽기에 들어간 북유럽 소국(小國) 아이슬란드. 이 나라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6만 달러가 넘는 ‘부자 나라’였다. 도대체 1년도 안 된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22일 인구 약 30만2000명 중 20만 명이 몰려 사는 수도 레이캬비크.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에 택시운전사는 주유소에서 어렵지 않게 기름을 채웠다.

사람들이 물건을 싹쓸이한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시내에 있는 24시간 슈퍼마켓 ‘1011’의 진열대는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불빛도 꺼지지 않았다. 전망대 ‘페르난’에서 바라본 이 북극권 도시의 야경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러나 바깥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이면에서 이미 고통은 시작됐다.

○‘화려한 빚잔치’의 끝은 한숨뿐

기자가 머문 작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스테판 한트(37) 씨. 그는 2년 전 새 집을 2400만 크로나를 주고 샀다. 당시 1000만 크로나는 지불하고 나머지 1400만 크로나는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레이캬비크 시민 중에선 한트 씨 같은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몇 년 전부터 엄청나게 많은 집이 레이캬비크 주변에 지어지면서 주변에 아예 위성도시 하나가 새로 생길 정도였다.

집값이 오르니까 너도나도 앞 다퉈 집을 샀다. 한트 씨도 ‘그 행렬’에 끼어들었다. 은행은 ‘집값 100% 대출’이라는 광고문구를 걸고 적극 영업을 했기 때문에 대출을 받는 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서 한트 씨 집은 깡통주택이 됐다. 주택가격이 대출액보다 적어진 것.

반면 주거비는 물가상승률에 연동된 이자율로 인해 1년 사이에 20%나 올랐다. 택시운전사 라그나르 에이릭손(49) 씨는 2년 전 새 차를 사기 위해 은행에서 차량가격의 100%를 대출받았다. 그런데 당시 아이슬란드 정부가 오래전부터 외국 예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크로나화의 이자율을 높게 책정했기 때문에 그는 크로나화를 피해 유로화로 자금을 조달했다.

실제 그 주변의 많은 사람이 엔, 유로, 스위스프랑 등의 외화로 대출을 받고 있었다. 지금 그것이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2년 전만 하더라도 아이슬란드 국민은 80크로나만 있으면 1유로를 살 수 있었다. 지금 환율은 1유로가 130크로나에 가깝다. 에이릭손 씨는 “크로나화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대출금이 하루아침에 두 배로 늘었다”고 말했다.

2003년 민영화된 아이슬란드 은행도 똑같은 길을 걸었다. 이 은행들은 지난 수년간 영국과 네덜란드로 급속히 투자를 확대했다. 37세의 젊은 은행장이 이끈 아이슬란드 최대 카우프싱 같은 은행은 유럽의 경쟁자들보다 훨씬 더 좋은 이자율을 제공했다.

지난해 아이슬란드 중앙은행의 총 외환보유액이 20억 유로에 불과한 상황에서 지난해 아일랜드 은행들의 총자산은 1000억 유로까지 늘어났다.
거품 붕괴 잇단 경고에도 “괜찮겠지” 안일한 대응

○ 해외자본 탈출에 백기

그런데 올해 들어 글로벌 신용위기가 본격화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해외자본들이 속속 돈을 빼가면서 아이슬란드 주요 은행들이 순식간에 유동성위기에 빠진 것. 이에 앞서 ‘전조’도 있었다. 2006년부터 국제투기자본이 저금리의 달러자금을 차입해 신흥시장의 고수익 자산에 투자하는 이른바 ‘캐리트레이드(carry trade)’를 청산하면서 2006년 크로나화가 급락하기 시작했다.

결국 잔치는 끝났다. 이달 들어 파산 위기에 처한 카우프싱 등 3대 은행이 모두 다시 국유화됐다. 크로나화는 이제 국제 외환시장에서 더는 ‘통용되지 않는 화폐’가 됐다.

아이슬란드대의 아사엘 발펠스 교수는 “아이슬란드의 크로나화는 이제 ‘역사’가 됐다”고 한탄했다. 주식시장은 문을 닫은 지 오래다. IMF의 구제금융이 확정되고 구조조정이 본격 진행되면 수많은 아이슬란드 사람은 직장을 잃어야 할 처지다.

한트 씨는 “한때 소박하고 단순한 어업국가였던 사실을 잊어버린 아이슬란드가 너무 오랫동안 분에 넘치는 생활을 해왔다”고 말했다.

사실 거품 붕괴에 대한 경고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물론 아이슬란드는 오래전부터 부유한 나라로 꼽히긴 했지만 나라의 규모가 작다 보니 경제위기로 국가 전체가 자주 흔들렸다. 화폐 가치가 절반으로 떨어지고 물가가 2배씩 오르는 일이 심심찮게 있었다. 그러다보니 위기 경고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1974년부터 아이슬란드에 거주해온 김태철(64) 씨는 “‘이번에도 한 1년 지나면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아이슬란드는 지구상에서 활화산이 가장 많은 나라다. 영어로 가이저(geyser)라고 부르는 간헐천은 아이슬란드의 ‘게이지르’라는 지명에서 왔다.

간헐천은 금융시장과 닮은 데가 있다. 간헐천은 조용하다가 규칙적으로 거품이 형성되고 언젠가는 폭발한다. 지금 아이슬란드가 꼭 그런 모습이다.

레이캬비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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