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전화에 낚인 페일린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11월 3일 02시 55분



1일 페일린 후보에게 장난전화를 건 캐나다 몬트리올 CKOI 라디오방송의 코미디언 듀오.
1일 페일린 후보에게 장난전화를 건 캐나다 몬트리올 CKOI 라디오방송의 코미디언 듀오.
캐나다 라디오, 사르코지 행세한 코미디언과의 통화내용 방송
작년엔 佛사르코지도 당해
공화 “막판 악재될라” 걱정


세라 페일린 미국 공화당 부통령 후보가 1일 자신을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라고 속인 캐나다 라디오방송 코미디언의 '가짜 전화'에 당했다.

그냥 웃어넘기고 말 수 있는 이야기지만, 통화내용 가운데는 "부통령 후보로서의 판단력과 상황 대처 능력에서 허점을 드러냈다"고 흠잡힐 대목들이 있다. 때문에 공화당은 선거일 직전 악재가 될까 봐 걱정하고 있다.

"여보세요. 저는 프랭크 루브리에입니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페일린 주지사와 통화를 위해 기다리십니다."

"잠깐만요. 주지사님을 연결하겠습니다."

페일린의 여비서가 깜짝 속아 넘어간 프랭크란 남자는 사실은 '마스크를 쓴 복수자'란 별명의 캐나다 퀘벡 몬트리올 시 소재 CKOI 라디오방송에 출연하는 코미디 듀오(2인조)중 한명이다. 이들은 가짜 전화로 유명인사들을 골탕먹이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지난해 사르코지 대통령도 캐나다총리를 가장한 전화에 당한 바 있다.

"세라입니다."

"페일린 주지사?"

"헬로~오오"(페일린 후보)

"잠깐만 기다리세요. 사르코지 대통령을 연결하겠습니다."

전화가 연결되는 동안 수화기 너머로 "이런, 아직 그가 아니잖아. 항상 이렇다니까, 그쪽이 직접 연결돼 있을때 전화를 바꿔줘야지"라는 페일린 후보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이어 프랑스 억양의 영어 액센트를 구사하는 가짜 사르코지와 페일린 후보가 통화를 시작한다. 다음은 일부 대목.

△사르코지(가짜)="귀하의 캠페인을 나의 특별 미국인 참모인 조니 핼리데이(프랑스의 유명 가수이름)와 함께 지켜보고 있습니다"

△페일린="네, 좋네요."

△사="자신있어요?"

△페="매우 자신있어요. 여론조사들이 접전의 승부로 나오고 있어요."

△사= 언젠간 당신도 대통령이 돼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페=(어색한 웃음) 아마 8년후에요. 하하.

△사=아세요? 우리는 많은 공통점이 있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취미도 사냥이거든요."

△페=오, 매우 좋아요. 함께 사냥을 가면 되겠네요.

△사=그렇지요. 당신이 해봤듯이 함께 헬리콥터를 타고 사냥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아직 그래본적은 없지만.

△페=(어색한 웃음)

△사=우리가 프랑스어로 말하듯 'on pourrait tuer des b¤b¤s phoques aussi'('새끼 물개들을 죽일 수 있을 것'이란 뜻) 합시다.

△페=(웃음) 그래요. 함께 하면 재미있을거예요. 일석이조를 할 수 있지요(kill two birds with one stone)

△사= 난 동물을 죽이는게 좋아요. 음~음. 생명을 빼앗는데, 그거 재밌잖아요."

△페=하하하

△사=당신이 체니 부통령만 안 데려온다면 정말 가고 싶어요(딕 체니 부통령이 여우 사냥을 하다 사람을 쏴서 물의를 일으킨 것을 빗댄 것임).

△페=No('안 데려간다'는 뜻). 저는 조심스럽게 총을 쏴요.

△사=우린 공통점이 많은데, 다만 우리 집에선 벨기에를 볼 수 있는게 차이입니다.(페일린 후보가 미 언론인터뷰에서 '알래스카가 러시아와 이웃해 있다'는 점을 예로 들며 자신의 외교안보 경험을 강조한 것을 비꼰 것)

△페=글쎄요. 우리는 함께 협력해야할 다른 나라들에 붙어 있군요.

△사=일부에선 당신이 외교경험이 부족하다고들 하는데, 그건 완전히 잘못된거예요. 제 절친한 친구인 캐나다 총리 스텝 카스(퀘벡의 가수 이름. 실제 총리는 스티븐 하퍼)에게도 그렇게 말했어요.

△페=그 사람도 일을 잘하더군요. 저평가를 받는다는건 평론가들이 틀렸음을 입증할 기회를 갖는거지요. 훨씬 더 열심히 하게되고.

△사=퀘벡 주지사인 리처드 사이로이스(퀘벡의 유명 라디오 진행자 이름)를 최근 만난적이 있나요? 그도 내 친구인데. 당신 유세에 왔던가요?

△페=유세에선 본적이 없어요. 하지만 캐나다 관리들과 협력하는건 기쁜 일이예요. 당신과 함께 일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그리고 당신의 아름다운 아내, 오~세상에, 당신은 아름다운 가족들과 함께 당신 나라에 많은 에너지를 부여해 왔어요.

△사=감사합니다. 아세요? 내 아내 카를라는 내가 당신과 통화한다니까 약간 질투하더군요. 하하하. 그녀는 유명가수이자 전직 톱 모델이고, 침대에서 화끈해요. 그녀가 당신을 위해 노래를 작사했어요.

△페=세상에, 몰랐어요.

△사=프랑스어로 'Du rouge ¤ l¤vres sur une cochonne'('더러운 여자의 립스틱'이란 뜻)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배관공 조~그것은 그의 인생, 배관공 조….

△페=아마 그녀는 불공정한 비판이 무엇인지 이해할 거예요. 당신이 그런 비판을 헤쳐왔음을 그녀는….

△사= '배관공 조' 현상이 잘 이해가 안돼요. 배관공 조는 당신 남편 입니까? 맞지요?

△페=음…. 내 남편도 그런 측면이 있지요. 그는 열심히 일하고, 정부가 돈을 뺏어가는걸 싫어하는 평범한 미국인지요.

△사=NBC는 물론 심지어 폭스뉴스도 당신편이 아니더군요. 안됐어요.

△페= 네, 그게 우리가 맞서야 하는 현실입니다.

△사=페일린 주지사. 나는 당신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사랑합니다. 아세요? 허슬러(포르노 잡지)의 '네일린 페일린'.

△페= 좋네요. 감사합니다. 네.

△사=진정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말해야겠는데, 주지사님, 당신은 장난에 당했어요. 우리는 몬트리얼의 코미디언입니다.

△페=오~. 이게 다 장난이었다고요? 어떤 라디오 방송이라고요?

이어 페일린 후보는 "라디오 방송국 철자를 말해달라"고 한뒤 전화에서 물러난다. 희미하게 "맙소사(chrissakes)…라디오방송 장난전화래…맙소사"라는 소리가 들린다.

그 사이 '악동들'은 "헬로. 오바마의 경우 한명의 목소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매케인의 경우엔 한알의 바이아그라가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라고 전화기에 대고 소리친다. 이어 매케인의 여비서가 "미안하지만 전화를 끊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며 전화를 끊자 '악동들'은 환호성을 터뜨린다.

장난 전화가 페일린 후보에게 연결된 경위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코미디언들은 "수일간의 노력 끝에 페일린 캠프 내부의 보안·확인 절차를 뚫었다"고 기세를 올렸다.

장난전화 내용이 캐나다 언론에 보도된뒤 페일린 캠프는 대변인 명의 논평을 발표했다.

"페일린 주지사는 장난꾼들이 목표가 된다는 점에서 사르코지 대통령을 포함한 국가 수반들의 반열에 올랐음을 알게돼 온화하게 즐거워했다. C'est la vie(인생은 그런 것)."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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