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마비돼 사채 쓰기도
러시아를 대표하는 기업들이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자금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줄줄이 구제금융을 신청하고 있다.
2일까지 러시아 정부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기업 명단에는 러시아 최대 국영기업인 가스프롬과 러시아 1위 석유기업 로스네프티가 들어 있다.
가스프롬은 글로벌 위기가 러시아에 밀려오기 전 시가총액 기준으로 세계 3위까지 올라가기도 했던 러시아 대표기업. 가스프롬이 러시아 정부에 10억 달러를 빌려 달라고 손을 내민 것은 심각한 자금 압박 때문이라고 러 일간 노바야가제타가 보도했다.
로스네프티는 2003년부터 다른 석유기업 자산을 인수하며 러시아 최대 석유기업으로 떠올랐지만 국제유가가 하락하고 주가가 4분의 1 토막 나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러시아 최대 알루미늄기업 루스알, 1위 민간은행 알파은행도 구제금융을 신청한 회사 명단에 들어갔다.
전문가들은 이런 기업들이 러시아 수출의 60%를 차지했던 대표적인 우량기업이라면서 유동성 위기를 피해 갈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우량기업들도 금융위기 쓰나미 앞에서는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러 금융전문가 옐레나 아난키나 씨는 “가스프롬과 같은 자원기업들은 단기부채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자금 동원 효율성이 떨어져 굴욕적 사태를 맞고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 대표기업들의 돈이 마른 것은 은행과 주식 등 제도권 금융시장이 마비됐기 때문이다.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이 치솟자 러시아 기업들은 은행을 찾아갔다. 하지만 은행들도 제 발등의 불을 끄느라 신규 대출 이자율을 40%까지 올리며 대출 창구를 사실상 폐쇄했다.
우량기업들이 이용하던 채권시장도 자금회전이 막혔다. 러시아 정부는 8월부터 루블화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외환보유액에서 1100억 달러를 꺼내 썼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우량기업들의 신용등급은 수직으로 떨어져 이들 기업의 채권 발행도 중단됐다.
제도권 금융시장의 마비로 대부분 러시아 기업들은 지하경제가 지배하는 사채 시장에서 이자를 먼저 내고 급전을 구해오는 신세라고 현지 전문가들이 전했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