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을 위해 출입문은 꼭 잠그고 다닙시다.”
요즘 모스크바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은 이런 얘기를 자주 듣는다. 외출할 때 현관과 출입문을 열쇠로 잠가 놓지 않으면 이웃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기 일쑤다.
모스크바 시내에서 도난 사건이 늘고 있다는 뉴스가 전해진 이후의 풍경이다.
지난달 31일 모스크바 남부의 한 무역업체에서는 금고가 털렸다. 이 회사 건물에 설치된 가스 배관을 타고 8층 사무실에 들어간 도둑들은 회사 금고에 있던 100만 루블(약 4600만 원)을 훔쳤다고 ‘에코모스크바’ 라디오방송이 전했다.
‘채널3’ TV는 1일 “모스크바 주(州)에서 아파트와 가게를 터는 좀도둑이 극성을 부려 경찰이 야간 순찰을 크게 강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제도권 금융에 대한 불신 풍조는 도난 피해를 줄이지 못하는 요인이다. 1990년대 금융위기 당시 예금 통장을 갖고 있다가 루블화 급락으로 많은 돈을 잃었던 주민들은 이번 금융위기에서도 현금을 집안에 보관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러 일간 코메르산트는 지난달 저축예금 인출 금액이 90억 루블(약 42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시내 중심가에서 순찰을 돌고 있던 한 경찰은 “도난신고가 늘어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라며 “1990년대 유행한 ‘도둑의 계절’이 다시 돌아왔다”고 말했다.
일반 가정과 중소기업의 금고를 터는 좀도둑에 비해 규모가 큰 대도(大盜)들은 벌써 해외로 도망갔다. 재정이 악화된 모스크바 주 두마의원이었던 바실리 두파크 씨는 지난달 6500만 루블(약 30억 원)을 갖고 해외로 나갔다. 같은 주에서 경제장관으로 일했던 알렉세이 쿠즈네초프 씨 등 공무원들도 올해 8월 주 금고에서 수억 달러씩을 챙겨 해외로 잠적했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