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간호사의 팔에서 휴식을 취하면서도 만나는 사람에게 “유권자 등록을 했느냐”고 묻곤 한다. 워디 씨는 과거 잔인한 인종차별의 시대부터 흑인도 대통령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한 지금까지 거의 한 세기를 살아온 세대다.
워디 씨처럼 산전수전 다 겪은 90세 이상 흑인들에게 4일 대선일은 생애 최고의 역사적 순간이 될 것이라고 워싱턴포스트가 2일 보도했다.
90대 흑인은 태어나면서부터 ‘짐 크로’와 함께 살아왔다.
짐 크로는 흑인 유랑극단 코미디에 등장하던 주인공 이름. 여기에서 따온 인종차별법인 ‘짐 크로 법’은 1890년대 후반 남부에서 전국으로 확산됐다.
이 법 때문에 흑인과 백인은 기차에서 같은 칸에 탈 수 없었고, 극장, 여관, 식당, 화장실 등도 흑인용과 백인용으로 나뉘었다. 해변과 공원에는 아예 흑인이 갈 수 없었다. 이 법은 1960년대 흑인 민권운동이 일어날 때까지 지속됐다.
90대 흑인은 청·장년 시기로 접어들면서 제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겪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다시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흑백 차별은 여전했다.
14세 흑인 소년이 친척집에 갔다가 근처에서 마주친 백인 여성에게 휘파람을 불었다는 이유로 구타당해 숨진 ‘에밋 틸 사건’(1955년)이 발생하자 흑인 민권운동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1964년 민권법 제정으로 인종차별이 금지된 뒤에야 흑인 인권은 한두 걸음씩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런 사건을 모두 겪은 90대 흑인들로서는 오바마 후보가 주요 정당의 대선후보가 된 것은 물론이고 압도적인 우세 속에서 대통령 취임이 예상되는 지금의 상황이 믿기 어려울 만큼 반가운 일이다.
버지니아 주 알링턴에 사는 아서 그린(91) 씨는 며칠 전 조기투표로 한 표를 던졌다. 해충 박멸업자이던 그는 버지니아 주에서 짐 크로의 악령이 확산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백인 거주지 주택의 해충을 잡아 달라는 연락을 받고 갔다가 ‘흑인인 줄 몰랐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부당했던 그는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우리(흑인)의 약진을 볼 수 있을 만큼 오래 산 것이 무척이나 감사한 일이다”고 말했다.
워디 씨는 “오바마 후보는 우리 모두가 목숨을 던져 싸워 얻으려고 했던 것을 이미 달성했다”며 “오바마 후보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