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 매케인 ‘박대’-페일린 ‘십자포화’ 공정성 논란
"세라 페일린(공화당 부통령 후보)에 대한 AP통신의 보도는 내가 평생 봐온 기사들 가운데 가장 경멸적이고 비꼬는 방식이었다."(격주간 '뉴리퍼블릭'의 기자 이브 페어뱅크 씨·10월 초 AP통신의 페일린 후보 공격 기사들에 대해)
"폭스뉴스와 드러지리포트, 존 매케인 캠프의 '3자 연합'이 거짓 논쟁을 꾸며내고 있다"(버락 오바마 후보 캠프 대변인· 10월 28일 오바마 후보의 부(富) 재분배 논쟁과 관련한 논평)
미국 대통령 선거는 '미디어선거'라고 불린다. 그만큼 언론의 영향력이 크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난 10개월간 미국 언론이 대선 레이스를 보도하면서 공정성을 지켰는지에 대해 미국 내에서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사람마다 이념적 성향, 지지후보에 따라 공정성을 보는 견해에 차이가 크지만 전반적으로 이번 대선에서 미 언론, 특히 주류 언론이 심한 '리버럴 편향성(bias)'을 보였다는 평가가 많다.
사실 미국 사회에서 대학교수 집단과 더불어 언론 종사자들의 리버럴 성향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선 '도를 넘어섰다'는 탄식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라스무센 조사에서도 '언론이 자기네가 원하는 후보를 도우려 한다'는 대답이 69%나 나와 '편향되지 않게 보도한다'는 응답(21%)을 압도했다.
'세 정치인 중 누가 언론으로부터 가장 우호적인 대우를 받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오바마 57%, 클린턴 9%, 매케인 21%로 오바마 후보를 꼽은 응답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힐러리→매케인 캠프로 이어진 불만=언론 공정성 논란은 올해 초 민주당 경선 때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 캠프에서 먼저 터져 나왔다.
언론이 오바마 후보에 대해선 '변화' '통합' '새로운 시대'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반면 힐러리 의원에 대해선 '까다롭다' '성격이 깐깐하다'는 등의 이미지를 확산시키고 있으며 그 근저엔 '여성 후보'에 대한 편견이 깔려 있다는 불만이었다.
이 같은 불만은 공화당으로 옮겨갔다. 주요 신문 1면, 방송 헤드라인 뉴스의 후보별 보도 분량에서 오바마 후보가 매케인 후보에 비해 2~3배 많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선거막판 공화당 유세장에선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리버럴 경향 언론사에 대한 성토가 자주 나왔다.
▽세라 페일린을 향해 쏟아진 '리버럴 언론의 분노'=사실 매케인 후보는 이번 대선전 이전만 해도 언론의 우호적인 보도 대상이었다. 주요 언론은 그의 불같은 성격을 지적하면서도 70평생 명예와 지조를 지켜온 전쟁영웅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해왔다.
이번 대선전에서도 뉴욕타임스가 올해 2월 '매케인 후보가 여성 로비스트와 불륜 관계를 맺고 특혜를 줬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특집기사를 보도한 것을 제외하곤 매케인 후보 개인에 대한 비판은 많지 않았다.
그러다 언론의 집중포화는 세라 페일린 부통령 후보에게 쏟아졌다. 폭스뉴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언론은 페일린 후보의 자질이나 도덕성과 큰 관련이 없는 17세 딸이 임신한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이 문제를 매케인 진영의 러닝메이트 선정 과정이 허술했다는 식으로 연결시켰다.
특히 논쟁의 도마에 자주 올랐던 언론사는 AP통신이었다. 객관적이고 정보가 풍부한 뉴스로 정평이 난 AP통신은 페일린 후보에 대해서는 이례적이라고 해도 무방할만큼 주관적이고 자극적인 표현이 담긴 보도를 많이 내보냈다.
일례로 페일린 후보가 오바마 후보와 빌 아이어스 교수의 연관성을 거론하자 AP통신은 "실체도 없는, 인종적으로 물든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인종 편견'으로 몰아붙이면 어느 누구도 더 이상 입을 열기가 어려운 미국 사회의 특성상 그런 비판은 매우 자극적인 것이었다.
라스무센 여론조사에서 51%의 응답자는 '기자들이 페일린 후보에게 상처를 주려 한다'고 응답했다.
▽통신 방송 신문 예외없어=라스무센 여론조사에서 AP통신에 대해 '리버럴 편향이다'라고 답한 응답자가 30%로 '보수 편향'(12%) 답변보다 많았다.
ABC CBS NBC 등 3대 지상파 방송 뉴스에 대해서도 응답자의 39%는 '리버럴 편향'이라고 답했다. 편향성이 없다는 응답은 25%였다.
양대 케이블 뉴스채널 중 CNN에 대해선 33%가 리버럴 편향이라고 답했고, 진보진영이 '불공정 보도'의 상징처럼 여기는 폭스뉴스에 대해선 31%가 보수 편향이라고 답했다.
'편향성 없다'는 평가는 CNN이 32%, 폭스뉴스가 36%로 폭스뉴스가 조금 더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상당수 주요 신문도 리버럴 편향이란 평가를 받았다. 주요 언론매체 가운데 보수편향은 폭스뉴스와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불과해 수적으로 리버럴 쪽이 훨씬 우세했다. 하지만 라디오 토크쇼의 경우엔 진행자들의 보수 성향이 강했다.
'대선에 관한 정보를 얻을때 뉴스 보도와 가족·친구의 말중 어느쪽을 더 신뢰하느냐'는 질문에 46%대 32%로 '가족·친구를 더 신뢰한다'는 대답이 많았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언론의 민주당 편향성이 이처럼 두드러졌던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8년 실정이 가져온 정권교체 열망, 오바마라는 역사적 상징성을 지닌 후보의 등장이 언론 내부에서 '중립·공정성 의무'에 대한 스스로의 결속과 부담감을 약화시킨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강경 우파 성향에다가 준비가 제대로 안돼 보이며, 언론에 대해 개방적이지 않은 여성후보'인 페일린 주지사는 리버럴 언론들에겐 '최적의 공격 대상'으로 여겨졌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