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선]오바마 ‘정치 고향’ 시카고 시민들 공원 몰려나와 축제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11월 5일 03시 04분



본보 이기홍-하태원 특파원 美 대선투표 현장을 가다
“첫 흑인대통령 탄생하나”
120개국 기자 1만여명 열띤 취재경쟁
새벽부터 투표행렬… 첫투표 뉴햄프셔 마을 40년만에 민주 승리
유권자 25% 전자투표… 일부지역선 “이틀간 투표” 유언비어도

4일 미국 전역은 뜨거운 투표 열기에 휩싸였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탄생 여부에 전 세계가 관심을 쏟고 있는 가운데 이날 투표장마다 동이 트기 전부터 긴 줄이 늘어서기 시작했다.

○…4일 오전 6시. 격전지인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의 킬머중학교. 짙은 어둠 속에 학교 주차장은 차를 세울 곳이 없을 정도로 만원이었다. 학교 건물 밖에선 민주, 공화 양당 봉사자들이 따뜻한 환영인사를 건네며 ‘샘플 투표지’를 나눠줬다.

민주당의 샘플 투표지는 ‘버락 오바마-마크 워너(민주당 상원의원 후보)…’의 빈칸에 체크돼 있고, 공화당의 샘플 투표지는 ‘존 매케인…’에 체크된 ‘모범 답안지(?)’였다.

투표장인 강당에는 이미 긴 줄이 몇 겹으로 형성돼 있었다. 공화당 지지자인 제니 스티븐스(32) 씨는 “출근시간이 7시여서 시간이 빡빡하지만 매케인 후보가 불리한 상황에서 한 표라도 빠지면 안 될 것 같아 아침도 거르고 나왔다”고 말했다.

공화당원이지만 이번엔 오바마 후보에게 투표했다는 크리스토퍼 길버트(64) 씨는 “이라크에서 내 아들 같은 젊은이들이 죽어 가는 뉴스를 들을 때마다 분노에 떨며 바로 이날을 기다렸다. 오늘은 부시에 대한 심판일이다”라고 말했다.

간선도로 곳곳에는 ‘Change, We believe in(우리는 변화를 이룰 수 있다)’이라는 팻말을 든 민주당 자원봉사자들, ‘Center vs. Far Left(중도 대 극좌파의 대결)’라고 적힌 팻말을 든 공화당 지지자들이 도로 가운데 중앙녹지에 길게 서 있었다.

○…오바마 후보의 정치적 고향인 일리노이의 주도 시카고의 열기는 어느 도시보다 뜨거웠다. 미국 언론과 120여 개 외국 언론사의 기자 1만여 명이 몰려들면서 시카고는 단숨에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정치도시로 떠올랐다.

많은 시민이 아침 일찍 투표를 마친 뒤 오바마 후보의 선거운동 뒤풀이 겸 당선 축하연이 예정된 도심 공원 그랜트파크에 몰려와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이들은 이미 오바마 후보의 당선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듯한 분위기였다.

이날 저녁 지지자 6만5000여 명을 비롯해 100만 명 이상의 인파가 이곳에 몰릴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현지 경찰에는 비상이 걸렸다. 도심에서 차로 약 20분 떨어진 오바마 후보의 자택 앞 도로 양쪽은 콘크리트 방어벽과 철책으로 완전히 통제됐다.

이런 과열된 분위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오바마 후보가 패할 경우 흑인들을 중심으로 폭력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오바마 후보는 이날 오전 8시 50분경 부인 미셸 여사, 두 딸과 함께 시카고 자택 인근 초등학교에서 한 표를 던졌다.

○…이번 대선의 첫 투표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4일 0시 뉴햄프셔 주의 작은 산간마을 딕스빌노치와 하츠로케이션에서 시작됐다.

오바마 후보는 딕스빌노치에서 15 대 6, 하츠로케이션에서 17 대 10으로 매케인 후보를 꺾고 첫 승을 신고했다. 민주당 후보가 이곳에서 승리하기는 1968년 허버트 험프리 후보 이후 40년 만에 처음이다. 산간이어서 0시부터 투표가 허용되는 딕스빌노치는 1960년부터 미국 대선의 첫 테이프를 끊어 왔다.

○…이번 선거는 인종 대결 등 여러 휘발성 갈등 요인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하지만 예년 대선 때와 마찬가지로 유권자들을 협박하거나 속여 투표를 막으려는 유언비어가 곳곳에서 있었다.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의 흑인 밀집지역에서는 투표장에서 주차비 미납자나 전과자를 체포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오바마 후보가 홀로코스트에 연루돼 있다는 내용의 e메일도 유포됐다.

투표 시간 연장을 둘러싸고 갈등도 불거졌다. 버지니아의 흑인 밀집지역에 투표 기계를 추가로 설치할 수 있도록 투표시간을 연장해 달라는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의 요청을 지역 판사가 거부한 것.

이번 선거에서는 유권자 25%가량이 터치스크린 방식의 전자투표를 했다. 과거보다 늘어난 비율이지만 터치스크린 방식은 유권자가 자신의 선택대로 투표가 이뤄졌는지 증명할 자료가 없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고 뉴욕타임스가 지적했다.

○…이날 미 전역 1300여 투표소에서 3000여 명의 조사원이 출구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대상자는 10만 명이 넘은 것으로 추산된다. 이번 출구조사는 당일 투표자뿐 아니라 조기 투표 및 부재자 투표자 1만 명을 대상으로도 실시됐다.

특정 계층이 설문조사에 잘 응답하면서 생기는 오차를 막기 위해 설문조사 시행기관들은 조사요원으로 나이 많은 사람을 더 많이 채용했다.

출구조사를 주관하는 ABC와 CBS, NBC, 폭스뉴스, CNN, 그리고 AP통신은 2004년에 언론사 간 과당 경쟁 때문에 빚었던 물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오후 5시 이전에는 출구조사 결과를 시행기관으로부터 취득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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