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감자 법적권리 불인정’ 부시 행정부에 직격탄
‘수용소 조기폐쇄’ 오바마 공약 실행여부에 촉각
《미국의 테러용의자 구금시설인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에 대한 폐지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 연방법원이 수감자의 인신보호권을 인정해 5명을 석방하라는 첫 판결을 내렸다. 미 연방 지방법원의 리처드 리언 판사는 20일 미군에 대항하기 위한 목적으로 아프가니스탄으로 이동하려고 계획한 혐의로 수감돼 온 알제리 출신의 관타나모 수감자 6명에 대한 재판에서 “알 카에다와 연관됐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라크다르 부메디에네 씨 등 5명을 즉시 석방하라고 판결했다. 1명은 유죄가 인정됐다.》
리언 판사는 미국 정부가 이들 5명에 대해 제출한 증거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1명에게 전적으로 의존한 것이어서 신빙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들이 재판을 받기 위해 7년을 기다려온 것으로 충분하다”며 이례적으로 검찰 측에 항소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 대해 미 법무부는 “실망스럽다”고 평가해 항소를 제기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번 재판은 미 대법원이 6월 관타나모 수용자들도 인신보호권(habeas corpus·불법적 인신구속에 대해 개인이 항거할 권리)을 인정해 자신의 구금이 적법한지 민간 법정에 재판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데 따라 진행된 첫 사례다. 현재 미 연방법원에는 이와 비슷한 사건이 약 200건 계류돼 있다.
미 워싱턴 지방법원은 지난달 관타나모에 수감 중이던 위구르족 출신 중국인 17명을 석방해 미국 본토로 이송하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석방’보다는 ‘이송’이 가능한지가 쟁점이었기 때문에 이번 재판과는 의미가 다르다고 워싱턴포스트는 분석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관타나모 수용자의 법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법적 분쟁에 최후의 일격을 가한 것”이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부메디에네 씨 등 5명은 9·11테러 직후인 2001년 10월 주보스니아 미국대사관에 대한 폭탄테러를 계획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2002년 1월부터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돼 왔다.
검찰 측은 이번 재판에서는 이들에 대해 폭탄테러 계획 혐의 대신 아프간으로 이동하려 했다는 혐의만을 적용해왔다.
9·11테러 이후 테러 용의자들을 수감하기 위해 2002년 1월부터 운용되기 시작한 관타나모 수용소에는 현재 255명의 수감자가 구금돼 있으며, 대부분 기소 절차 없이 몇 년씩 갇혀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이 그동안 여러 차례 공약한 대로 관타나모 수용소를 조기에 폐쇄할 것인지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 일간지 시카고트리뷴은 “오바마 당선인이 상원의원 시절 접하지 못했던 국가안보 관련 정보를 얻게 되면서 ‘어떻게 하면 약속을 이행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며 관타나모 수용소가 실제 폐쇄되기까지는 여러 난관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