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덩이 학자금 실태와 해법]<中>美-日-英 등의 사례

  • 입력 2008년 11월 26일 03시 02분


선진국 ‘등록금 후불제’…빌린 학자금 졸업뒤 벌어서 갚는다

《최근 어려운 경제 사정을 감안해 사립대들이 내년도 등록금을 동결하거나 인상폭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국립대들도 등록금 인상률을 낮추는 데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학이 등록금을 획기적으로 낮추지 않는 한 근본적인 처방은 정부의 학자금 지원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정부도 기초생활수급자를 위한 무상 장학금, 저소득층을 위한 학자금 대출, 근로장학금 등을 늘려가고 있지만 아직 현장의 수요에는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학자금 지원책이 발달한 선진국의 경우 학자금 지원 방식이 학생과 대학의 상황에 따라 매우 다양하고 회수하는 방식 또한 개개인의 소득과 연계하는 것이 특징이다.

정부의 학자금 지원 규모를 대학 평가와 연계하거나 등록금 인상 이유를 보고하도록 해 간접적으로 등록금 인상을 규제하는 나라도 있다.

또 독립적인 전담기구를 둬 학자금 지원 사업을 총괄하도록 하는 나라도 적지 않다.

미국의 연방학생지원청(FSA), 영국의 학자금관리공사(SLC), 일본의 일본학생지원재단(JASSO) 등은 모두 교육부 산하의 일개 부서였지만 학자금 지원의 중요성을 감안해 독립기구로 전환했다.

▽벌어서 갚는다=등록금 해법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방법이 등록금 후불제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이 시행하는 소득 연계형 학자금 대출제도(ICL·Income Contingent Loans)가 여기에 속한다.

대학생들은 정부로부터 학비를 빌려 공부한 뒤 졸업하고 취업해 일정한 소득이 생기면서부터 대출받은 학비를 갚는 방식이다.

영국은 수업료 후불제(Deferment Fee System)도 시행하고 있다. SLC가 학생들을 대신해 대학에 대출 형태로 수업료를 내준다. 학생들은 졸업 후 연봉이 1만5000파운드(약 3300만 원)가 넘었을 때부터 연소득의 9% 내에서 상환하게 된다.

1974년 대학 등록금을 완전히 없앴다가 12년 만에 등록금 납부를 부활한 호주는 갑작스러운 유상 등록금에 부담을 느낀 국민을 위해 1989년부터 후불제 성격의 소득 연계 학자금 대출을 시행하고 있다.

등록금을 빌리지 않고 학기 초에 미리 내거나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 되기 전에 자발적으로 빌린 등록금을 갚으면 10∼20% 할인해주는 것도 특징이다.

▽등록금 간접 규제 나선 미국=미국은 고등교육법 자체가 학자금 지원법이라고 불릴 만큼 연방정부가 고등교육 학자금 지원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가정 형편이 어려운 경우 △기피 전공을 선택해 일정 기간 공공기관에서 근무할 경우 △성적이 탁월할 경우 △이공계에서 좋은 성과를 보일 경우 등 무상으로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통로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1972년 저소득층을 위해 시작된 펠장학금(Federal Pell Grants)이다. 경제력이나 대학에 다니는 데 드는 경비 등을 따져 4년제 공립대 평균등록금의 75%까지 무상으로 지원한다.

빌 클린턴 행정부가 1995년 도입한 ‘미국 희망 프로그램(America's Hope Program)’을 통해 고교 졸업 이후에 받은 교육 비용 중 2년 치에 대해 연간 1000달러까지 세금을 공제해 주는 것도 중산층에게는 유용한 혜택이다.

미국은 최근 대학 등록금을 간접 규제하는 규정도 만들었다. 1990년대 이후 사립대를 중심으로 대학 등록금이 계속 오르자 올해 7월 개정한 고등교육법 제1장에 등록금 간접 규제를 명문화했다.

이에 따라 최근 3년간 등록금 인상률이 가장 높은 상위 5% 대학은 2010년부터 교육부에 등록금을 올린 이유를 구체적으로 보고하도록 했다.

▽일본은 신입생, 유학생도 학비 지원=우리나라는 학자금 지원이 재학생 위주여서 대학이나 대학원 합격통지서를 받은 뒤 입학금과 1학년 1학기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애태우는 경우가 많다.

반면 일본은 JASSO를 통해 재학생은 물론 입학 예정자, 유학생 등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고교 교장의 추천을 받아 JASSO에 등록하면 가정 형편에 따라 무이자 또는 저리 대출을 받을 수 있고 30만 엔의 입학준비금도 빌릴 수 있다.

2006년부터는 단기 해외 유학비 대출도 시작됐다. 일본 대학에 등록한 학생 가운데 3개월∼1년 동안 해외 대학에서 공부하는 경우 학비 외에 초기 정착 비용으로 30만 엔을 추가로 빌려준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먼저 출산율이 떨어지기 시작한 일본은 학부모들의 교육비와 노후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학자금 대출을 계속 강화하고 있다.

일본은 정부 차원의 대출은 활발하지만 무상 장학금은 없다.

그 대신 ‘올해의 JASSO 학생’을 선발해 잘하는 분야에 따라 추가 지원을 하거나 전공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낸 대학원생에게는 대출금 상환을 면제해 주는 방식으로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 정부 ‘소득 생기면 갚는 학자금 대출’ 추진

제도 시행땐 해마다 2조 필요

취업률 높은 이공계부터 실시

우리 정부의 학자금 대출은 한도나 지원 범위에서 선진국의 학자금 대출에 뒤지지 않지만 학생들이 빌린 돈을 갚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영국이나 호주, 뉴질랜드 등은 졸업 이후 어느 정도 소득이 발생해야 빚을 갚기 시작하는 반면 우리나라나 일본은 소득과 상관없이 무조건 대출 상환이 이뤄진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도 어느 정도 돈을 벌게 되면 원리금을 갚기 시작하는 소득연계형 학자금대출제도(ICL)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교육과학기술부가 연구 중인 ‘한국형 소득연계 학자금대출(KICL)’이 그것이다.

그러나 KICL을 도입하는 데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다른 제약이 있다.

영국 호주 등은 대학 진학률이 그다지 높지 않은 데다 ICL이 시행된 지 이미 20년이 가까워져 대출금이 회수되고 있기 때문에 예산이 많이 들지 않는다.

반면 우리나라는 대학 진학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84%에 이르러 학생들이 소득이 생길 때까지 정부가 돈을 대려면 매년 2조 원 정도가 꾸준히 투입돼야 한다.

이 때문에 정부는 단계적으로 KICL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1단계로는 상대적으로 취업률이 높은 이공계에 한해 일부 대학에서 시범 실시한다. 어느 정도 안착되면 2단계로 소득 하위 5분위까지의 학생들에 한정해 지원 대학을 모든 대학으로 확대한다. 3단계는 모든 대학과 학과로 확대하면서 지원 대상 역시 소득 하위 7분위까지로 늘리는 방안이다.

또 1, 2단계에서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포함해 학생들에게 똑같은 대출 상한액을 적용하고, 3단계부터는 실제로 돈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을 따지기 위해 대학과 전공에 따라 각기 다른 상한액을 적용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대학의 신입생 충원율이나 취업률을 따져 대출 대상을 제한할 수도 있다. 현재 학자금 대출은 무조건 돈을 갚아야 하지만 KICL은 소득이 없으면 정부가 영영 돈을 회수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학자금을 빌렸다가 파산하거나 사망하면 상환을 면제하는 호주의 경우 미상환 대출금이 20%에 달한다. 이 때문에 호주는 정부 독립기구인 ‘호주대학교 질 인증기관(AUQA)’에서 대학 평가를 실시하고 결과를 소속 대학생의 장학금 규모를 결정하는 데 반영한다.

임준희 교과부 학생장학복지과장은 “우리나라도 대학정보공시제 및 대학평가 결과와 KICL을 연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대학이 정부 학자금 지원에 기대어 방만하게 운영되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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