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급락에 지갑 닫는 중동…건설사 ‘최대 돈줄’ 끊기나

  • 입력 2008년 12월 4일 02시 56분


대형 플랜트 등 공사 취소-입찰 연기 잇달아

건설업계 구조조정 고민… 脫중동 움직임도

《최근 국내 대형 건설사들은 사우디아라비아 국영기업체인 아람코로부터 한 통의 통지서를 받았다. 사우디 얀부 지역에 예정된 100억 달러 규모의 정유플랜트 공사를 취소한다는 내용이었다. 입찰 일정이 내년 초로 연기된 것으로만 알고 있던 국내 건설사들은 이 소식에 맥이 풀려버렸다.》

입찰 준비를 하던 국내 대형 건설사 플랜트 사업팀의 한 관계자는 “최근 국제유가가 배럴당 40달러대까지 하락하면서 중동 국가들이 개발사업은 물론 플랜트 공사까지 입찰을 연기하거나 취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건설업계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국내 주택경기의 불황 속에서 올해 역대 최고 실적을 올리며 ‘돈줄’ 역할을 해 온 해외건설 수주가 내년에는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원유가격 급락으로 플랜트 발주가 줄어들고 있는 데다 개발사업 분야도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면서 사실상 전면 중단된 것.

대형 건설사의 해외사업 담당자들은 대규모로 선발한 해외 인력들을 구조조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다.



○ 올해 수주액 464억 달러… 사상 최대 호황

3일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국내 건설사들이 해외에서 수주한 공사 금액은 약 464억 달러로 역대 최고 규모다.

반면 LG경제연구원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걸프협력회의(GCC) 6개 회원국의 프로젝트 중 올해 9월까지 중단 또는 취소된 프로젝트만 150여 건으로 금액으로는 500억 달러가 넘는다. 이는 전체 프로젝트의 10% 수준.

현대건설 해외사업본부 김상욱 상무는 “유가가 배럴당 50∼60달러 이상이 돼야 GCC 국가의 재정이 유지된다”며 “유가가 떨어지면 석유화학과 가스 플랜트를 포함한 모든 공사를 전면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SK건설의 플랜트사업 관계자는 “내년까지는 이미 예산이 확보된 사업이 많아 어느 정도 수주물량을 유지할 수 있지만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 2010년경에는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된다”고 말했다.

○ 금융위기로 자금 조달 어려움까지

해외 수주 물량의 10% 미만인 개발사업도 축소되거나 중단되고 있다. 최근의 금융위기로 대다수의 금융권이 자금 대출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GS건설은 캄보디아 프놈펜 시에서 추진 중인 ‘IFC프놈펜 프로젝트’의 사업을 절반으로 축소했다. 또 베트남에서 진행 중인 호찌민 4개 주택개발사업과 꾸찌 현 리조트사업에 대한 분양 일정을 연기했다.

국내 중견 건설사들이 진출한 중앙아시아에서는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상당수의 개발사업이 중단됐다.

국내 대형 건설 업계에서는 해외건설 인력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해외건설 수주 상위 업체들은 본격적인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까지 1년여 사이에 플랜트 사업 부문 등에서 5000명 이상의 인력을 채용했다. K건설 해외사업기획담당 임원은 “대부분의 건설사가 금융위기 전까지는 중동 특수가 최소 5년은 이어질 것으로 보고 대규모로 인력과 장비를 확보한 상태”라고 말했다.

○ 내년 러시아 북아프리카 진출 시도

국내 대형 건설사들은 내년에는 안정적으로 공사비를 회수할 수 있어 리스크가 거의 없는 단순 시공에 초점을 맞춘다는 계획이다. 최악의 경제위기가 오더라도 국가가 발주하는 기반시설 공사나, 선진국이 원조하는 공적개발원조(ODA)자금으로 진행되는 사업은 공사비를 회수하는 데 안정적이라는 것.

지역적으로도 중동 국가 편중에서 벗어나 신흥 에너지국가인 북아프리카와 러시아 등으로의 진출에 적극 나설 채비를 갖추고 있다. 롯데건설 해외사업본부 담당자는 “브릭스(BRICs) 국가를 해외 전략지역으로 선정해 계열사와 공동으로 진출하는 방식으로 내년 사업계획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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