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방콕’ 불이 꺼졌다

  • 입력 2008년 12월 4일 02시 56분


주성하 특파원 태국 방콕 르포

호텔 손님 80% 줄고 푸껫-파타야도 썰렁

교민들 “한국식당 문닫을 판…생계 막막”

외국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는 태국 방콕의 빳뽕가 상점거리. 하지만 기자가 둘러본 3일엔 하루 종일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시계를 팔고 있는 위라폰(32·여) 씨는 “지난해엔 하루 3000∼4000밧(약 12만∼17만 원)의 매상을 올렸는데 지금은 1000밧(약 4만 원)어치 팔기도 힘들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같은 거리에서 잡동사니 매장을 열고 있는 피폰팟(29·여) 씨는 “태국에서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8월부터 관광객들이 뜸해졌다”고 말했다.

시위 보도만 없다면 방콕은 일견 평온한 모습이다. 하지만 외국인 관광객이 뚝 끊기면서 많은 주민이 애를 태우고 있다. 특히 소상인들은 생계를 이어가기 힘들 지경이다.

▽불 꺼진 ‘관광대국’=불황의 그림자는 관광업계 전반에 짙게 드리워 있다. 호텔가가 집중된 스꿈빗 지역의 로열 파크뷰 호텔의 수랑랏(42) 카운터담당 매니저는 “손님이 80% 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한창 붐벼야 할 저녁 시간이지만 윈저 스위트 호텔 앞의 유명 일식당 ‘유젠’은 텅텅 비어 있었다.

방콕 시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짜오프라야 강도 평소에는 관광객을 태운 배로 붐볐지만 이날은 강물만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방콕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채정석 씨는 “단체관광객이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데 지금은 전혀 없다”며 “방콕의 한국식당 여러 곳이 문을 닫을 판”이라고 말했다.

불이 꺼진 곳은 방콕뿐만이 아니다. 태국 주요 관광지인 푸껫, 파타야 등의 사정도 비슷하다.

반정부 시위로 8월 공항이 폐쇄돼 직격탄을 맞았던 푸껫은 다시 찾아온 악재에 울상이다. 시위 피켓조차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평온하지만 불안감을 느낀 외국 관광객들이 발걸음을 돌렸기 때문.

정정 불안은 의료관광산업에도 심각한 타격을 줬다. 방콕의 대형 병원 붐룽랏 관계자는 “소요 사태로 태국의 이미지가 땅에 떨어져 앞으로 어떻게 환자들을 유치할 것인지를 놓고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있다”고 말했다.

태국 경제에서 관광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6%. 태국 정부는 올해 7000억 밧(약 29조 원)의 관광 수입을 올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목표는 벌써 물 건너간 상태다.

아마라 스리파육 태국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정치 상황이 조기에 개선되지 않으면 내년 태국 관광업계는 약 1400억 밧(약 5조8000억 원)의 손실을 볼 것”이라고 추산했다.

▽한인들도 울상=푸껫에서 한국인 자녀들을 대상으로 유치원을 운영하는 오숙경(46·여) 원감은 “관광객은 없고 오히려 철수를 고민하는 교민들만 늘고 있다”며 “이달에만 원아의 30%가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현지 여행사 사무소장 최승철 씨는 “방콕 공항 폐쇄 이후 예약이 20%가량 취소됐다”며 “예년 이맘때쯤엔 호텔 잡기도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한산하다”고 말했다.

파타야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는 오정헌(48) 씨는 “가뜩이나 환율 때문에 손님이 줄어 가족을 한국으로 보낼 판인데 공항까지 폐쇄되는 바람에 고스란히 손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주성하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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