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붉은옷-노란옷으로 나뉘어 갈등
“탁신 신뢰” vs “포퓰리즘이 나라 망쳐”
노란 옷을 입은 반정부 시위대가 태국 방콕의 수완나품 공항을 점거 중이던 2일 오전.
시내에서 택시를 열 대 이상 세웠지만 공항으로 가자는 기자의 요청에 기사들은 모두 승차를 거부했다. 웃돈도 통하지 않았다.
같은 날 태국 헌법재판소가 ‘국민의 힘(PPP)’ 등 3개 연립 여당의 해체를 발표한 지 몇 시간 뒤 행정재판소 앞.
붉은 옷을 입고 친정부 시위를 벌이던 팔라부레(44·여) 씨는 친정부 시위대가 모인 시청으로 택시를 타고 이동하려는 기자에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 택시운전사는 곧바로 혼잡한 시청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왜 그랬을까.
친정부 시위를 벌이던 세이완(64) 씨는 “탁신 전 총리는 나 같은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펴 왔다. 그는 태국을 부흥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택시운전사 등 서민층은 대부분이 친정부 성향을 보인다. 이는 탁신 친나왓 전 총리가 월 20밧(약 880원)만 내면 누구나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포퓰리즘 정책을 실시한 결과다.
서민층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기 때문에 여론조사에서도 친정부 성향을 가진 국민이 많다. 태국 예백대가 이달 초 실시한 조사에선 ‘정부를 지지한다’(26%)는 응답이 ‘지지하지 않는다’(15.5%)보다 높았다. 58.4%는 ‘중립’이었다.
이 때문에 총선이 다시 실시되면 서민층 지지율이 높은 탁신계의 승리가 예상된다.
반면 방콕 중산층과 군, 사법부 등 엘리트 계층은 대체로 탁신계에 대해 비판적이다. 반정부 시위대는 “부패한 탁신 일당이 무분별한 포퓰리즘 정책과 부정선거로 태국을 망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탁신 전 총리는 부정축재 및 권력남용 등 혐의로 체포영장이 청구된 상태로, 영국 아랍에미리트 등을 유랑하고 있다.
수완나품 공항 점거에 참가했던 놋파돈(45) 씨는 “탁신은 자신의 돈벌이를 위해 직위를 악용한 부패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분열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대다수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는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이다.
문제는 5일 생일을 맞는 국왕이 81세로 연로하다는 점. 반정부 시위에 참가한 놋파돈 씨는 “탁신 측근인 솜차이 웡사왓 총리가 사퇴했지만, 탁신은 국왕이 돌아가신 뒤 왕태자와의 협상을 통한 권력 복귀를 노리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국왕이 즉위 후 처음으로 4일 밤 예정된 연례 연설을 병환을 이유로 돌연 취소하자 정국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가 권력 투쟁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 ‘개입’을 회피했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그런데 그동안 몇 차례 수술을 받기도 했던 국왕의 건강이 실제로 악화돼 그가 서거할 경우 태국 내 혼란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편 해산명령을 받은 PPP당 지도부가 차기 정부 구성을 둘러싸고 계파 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선 정국 혼란을 막기 위해 의회 해산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태국 방콕=주성하 특파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