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터처블서 암흑가 보스 처단했듯이 결단 내려야”
‘시카고 정치’란 말은 한때 미국에서 부패한 정치의 상징처럼 통용되곤 했다.
미국 최고의 대통령으로 꼽히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정치적 고향인 까닭에 ‘링컨의 땅’으로 불리는 일리노이 주는 전통적인 비리의 온상이었다. 역대 주지사 4명이 기소됐고 지난 20년간 50명에 이르는 이 지역 정치인이 부패혐의로 옷을 벗었다.
이 때문에 ‘부패와 탐욕의 도시’ 하면 일리노이 주의 대표 도시 시카고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유명한 마피아 보스 알 카포네의 도시이자 철새 정치인이 많은 도시임을 비꼬아 ‘바람의 도시(windy city)’라는 말도 전해져 온다.
그러나 시카고가 정치적 본거지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시카고는 차기 정부의 핵심 인사를 배출하는 ‘새 정치의 진원지’가 됐다.
그런 상황에서 터진 로드 블라고예비치 일리노이 주지사의 상원의원직 매직(賣職) 시도 혐의에 쏠린 관심의 핵심은 이 사건의 파장이 오바마 당선인의 측근 그룹인 ‘시카고 사단’에까지 미칠지에 있다.
특히 사건 초기부터 람 이매뉴얼 백악관 비서실장 내정자의 이름이 “이매뉴얼은 추적 대상자가 아니다”는 검찰 측 설명을 덧붙여 자꾸 언론에 거론되면서 오바마 당선인에게도 적잖은 부담이 돼 왔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는 이매뉴얼 내정자가 주지사 측에 상원의원 후보 명단을 제공한 적이 있다고 당선인 측근의 말을 인용해 14일 보도했다. 시카고트리뷴도 검찰이 갖고 있는 도청테이프에 이매뉴얼 내정자와 블라고예비치 주지사의 대화가 포함돼 있다고 13일 보도했다.
물론 그런 접촉은 통상적으로 있을 수 있다. 뉴욕타임스도 이매뉴얼 내정자는 블라고예비치 주지사가 혐의를 받고 있는 ‘거래’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는 측근들의 말을 덧붙였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매뉴얼 내정자가 전달한 후임자 후보 명단에는 밸러리 재릿 백악관 선임고문 내정자, 리사 매디건 주 검찰총장, 잰 샤코스키 하원의원, 댄 하인스 은행감사관 등이 포함됐다. 매직 시도 혐의를 받고 있는 제시 잭슨 주니어 하원의원은 빠져 있다.
세르비아계 2세인 블라고예비치 주지사는 오바마 당선인이 내놓은 상원의원직을 자신의 선거자금 조성을 위해 거래하려 한 혐의로 9일 체포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났다. 미국의 주지사는 공석이 된 연방 상원의원직 후임자 임명권을 갖고 있다.
이번 스캔들로 블라고예비치 주지사가 조합원 200만 명의 서비스노조국제연맹(SEIU)과 결탁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했다. 블라고예비치 주지사는 상원의원 후임자 인선을 논의하기 위해 SEIU의 일리노이 책임자와 두 번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뉴스위크는 13일 오바마 당선인이 과거 시카고 암흑가의 보스 알 카포네를 처단했던 내용을 주제로 한 영화 ‘언터처블’의 강직한 검사 엘리엇 네스(케빈 코스트너) 이상의 부패 개혁 마인드와 위상을 보여줘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