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20-20-20 환경정책, 동유럽 제외 ‘김빠진 합의’

  • 입력 2008년 12월 15일 03시 01분


활짝 핀 미소와 함께 두 손가락으로 그려 보인 승리의 ‘V’자.

유럽연합(EU) 정상회의가 끝난 12일 폴란드의 도날트 투스크 총리는 “환경정책 논의 결과에 만족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런 제스처로 응했다. EU의 온실가스 감축안에 반대해 온 동유럽 국가가 제 목소리를 냈음을 보여 주는 상징적 표시였다.

EU의 27개 회원국 정상은 이날 ‘20-20-20’으로 불리는 유럽의 환경정책안에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2020년까지 이산화탄소(CO2) 배출량과 에너지 사용량을 20%씩 줄이고 재생가능 에너지의 비중은 20% 늘린다는 계획이다.

이날 합의는 그동안 이 환경정책에 강하게 반대해 온 동유럽 국가가 방침을 선회하면서 어렵게 도출됐다. 특히 나라 전체 전력생산의 90%를 석탄에 의존하는 폴란드 등은 초안 내용을 자국에 유리하게 바꾸기 위해 공격적인 자세를 보였다.

사정이 비슷한 이탈리아도 “우리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합의해 주지 않겠다”고 버텼다. EU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도 업계의 비용 부담을 우려해 측면 지원했다.

이 환경 정책이 시행될 경우 2020년까지 최소 1000억 유로(약 182조 원)의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EU 집행위원회는 추산했다.

결국 ‘20-20-20’ 정책 최종안은 초안에서 상당 부분 바뀐 채 통과됐다. 공개시장에서 돈을 주고 사야 하는 CO2 배출권은 동유럽 국가 등에 대부분 무상 공여키로 했고, 구입 시기도 2013년에서 최장 2025년으로 연장했다. 이를 ‘동유럽의 승리’라고 표현한 언론도 있다. 그린피스와 세계야생동물보호기금 등 환경단체는 공동성명을 내고 “유럽이 기후변화 문제에 맞서려는 노력을 외면하고 기존 약속을 깼다”고 비판했다.

문제는 경기침체가 심화될 경우 환경정책의 부담을 우려하는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의 목소리가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

시사주간 타임은 “EU 내에서 동·서유럽의 의견이 갈린 것은 전 세계적으로 환경정책에 대한 단결이 훨씬 힘들 것임을 보여 준다”고 지적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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