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부진한 민주화… 인민대중 정치참여 목소리 커져
소득격차 심각… 상위10%가 하위10%의 55배나 벌어
中정부 ‘빠르고 건전한 성장’ 강조하며 연착륙 안간힘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인 덩샤오핑(鄧小平)은 일찍이 개혁개방의 발전단계를 3단계로 정리했다. 첫 단계는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원바오(溫飽)이고, 두 번째는 그런대로 먹고살 만한 샤오캉(小康) 단계, 마지막은 현대화가 기본적으로 달성되는 단계로 21세기 중반까지 실현한다는 게 목표다. 이런 로드맵 속에 이뤄지고 있는 13억 중국인의 꿈은 시간표대로 실현될 수 있을까.》
중국 지도부 앞에 놓인 과제는 이전과는 달리 ‘질(質)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2020년까지 ‘전면적 샤오캉’ 실현
원바오는 1990년에 이미 실현했다. 샤오캉 단계 중 일부 지역 편차는 있지만 기본적 욕구가 해결되는 ‘1단계 샤오캉’도 2000년을 기점으로 달성됐다. 전체 인민이 먹고살 만한 ‘전면적 샤오캉’(1인당 소득 5000달러 안팎) 단계는 2020년까지 이뤄질 예정이다.
기본적인 현대화가 완료되는 21세기 중반엔 대부분의 인민이 비교적 부유한 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현대화 과정은 이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21세기 중반이 되더라도 중국의 생활수준은 여전히 선진국과 차이가 있고 이후로도 줄기찬 전진이 필요하다는 게 중국 지도부의 판단이다.
○ ‘뜨거운 감자’ 정치개혁
개혁개방 30년간 경제개혁은 양적 성장을 지나 질적 성장으로 도약하는 단계지만 정치개혁은 제자리걸음이다.
중국 지도부는 정치개혁과 민주화의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절대로 다당제와 지도자 직접 선출과 같은 서방 민주제도를 그대로 모방하지는 않겠다는 게 중국 지도부의 생각이다. 중국 지도부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학자들 사이에서는 다양한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학자들의 의견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일부는 스웨덴과 같은 민주사회주의를 이상사회로 여긴다. 미국과 같은 자유주의 모델을 선호하는 학자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 학자는 중국의 전통 가치와 서방 민주주의의 가치가 결합된 새 모델이 창출돼야만 한다고 보고 있다. 이는 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를 지지하고 공동체의 이익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서유럽 모델과 비슷하지만 중국의 전통이 결합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일부 학자는 이를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민주정치’라고 부르기도 한다.
학자들은 어느 방향을 택하더라도 현재의 ‘정부 만능주의’와 ‘국가보다 당이 우위에 있는’ 정치시스템은 바뀌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정부 행정의 투명화와 인민대중의 정치 참여도 선결 과제다.
중국 지도부는 최근 ‘중단 없는 개혁개방’을 강조하면서도 구체적 정치개혁 방안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정치개혁이 가까운 시일 내에 이뤄지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 사회안전망 구축 시급
정치개혁과 함께 중국 개혁개방의 양대 과제로 꼽히는 것은 바로 사회개혁이다. 이 중 대표적인 문제는 양로 의료 실업 산재보험 등 사회안전망 구축이다.
현재 대도시의 사회안전망은 어느 정도 갖춰진 편이다. 지난해 말 현재 도시의 양로 및 의료보험 가입자는 각각 2억137만 명과 2억2311만 명으로 지난해 말 전체 도시근로자 2억9350만 명의 70%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농촌은 상황이 크게 다르다. 양로보험 가입자는 5171만 명으로 전체 농촌 인구 7억2750만 명의 7%에 불과하다. 의료보험 가입자 역시 3131만 명(농민의 4.3%)에 불과하다. 병에 걸린 농민이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고 참다 병을 키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소득격차 해소 역시 시급한 과제다. 중국의 경제잡지 ‘차이징(財經)’이 최근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상위 10%가 벌어들인 소득은 하위 10%가 벌어들인 소득의 무려 55배였다. 중국 정부의 공식 통계 21배를 훨씬 상회한다.
도농(都農)격차 역시 심하다. 지난해 농촌 주민의 순수입은 4140위안(약 80만 원)으로 도시 주민의 가처분 소득 1만3786위안(약 267만 원)의 30%에 그쳤다.
지역격차도 심각해 지난해 간쑤(甘肅) 성의 주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6835위안으로 6만5347위안인 상하이(上海)의 10.5%에 불과했다.
○ 지도부 “건전하고 빠른 성장” 강조
중국은 지난해 1조2180억 달러를 수출해 독일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첨단기술 제품은 3478억 달러로 전체의 28.5%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임가공 제품이 대부분이다.
지난해 중국은 전 세계 에너지 소비량의 16.8%를 사용했다. 그러나 지난해 중국의 GDP는 전 세계의 6%에 불과했다. 결국 세계 평균의 3배의 에너지를 소모한 셈이다.
중국 지도부도 이런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 최근 ‘유하오유콰이(又好又快·건전하면서도 빠른 성장)’를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은 앞으로도 30년간 매년 7%의 고속성장을 계속해야만 선진국에 근접할 수 있지만 ‘건전하면서도 빠른’ 성장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위안쉬청(袁緖程) 중국경제체제개혁연구회 부(副)비서장은 “중국의 개혁개방이 30주년을 맞으면서 미증유의 압력과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앞으로 5∼15년이 중국의 성공을 판가름하는 중요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中 ‘금융위기 속 패권 확대’ 물밑 행보▼
“美패권 도전하려면 수십년 더 지나야”
비약적 경제성장에도 지도부는 신중
개혁개방 30년 동안 중국은 공룡만큼 커졌다. 경제 규모는 세계 3위권, 현재 외환보유액은 단연 세계 1위로 곧 2조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 중국을 무시할 수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 오히려 중국의 협조 없이는 어떤 국제문제도 해결하기 어렵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올해 7월 일본 도야코(洞爺湖)에서 열린 ‘에너지 안보 기후변화 주요 경제국’ 정상회의에서 중국은 2050년까지 온실가스를 50% 감축하자는 주요 8개국(G8)의 주장을 거부했다.
지난해 67억2000만 t의 이산화탄소를 방출해 59억 t인 미국을 제친 중국이 협조하지 않으면 세계의 온실가스 감축 계획은 의미가 없다.
2006년 말부터 시작된 중미(中美)전략경제대화는 당초 미국이 대중(對中) 압력용으로 곧잘 활용했지만 최근엔 전세가 역전되는 현상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금융위기를 활용해 국제무대에서 주도권을 강화하라는 일부 학자의 권유에도 중국 지도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중국의 이 같은 ‘태도’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실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예컨대 중국이 지난해 실전 배치한 최신예 전투기 젠(殲)-10은 100대가 덤벼도 미국의 F-22 한 대를 당하기 어렵다는 것.
베이징의 한 군사전문가는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려면 앞으로도 수십 년은 족히 지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