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컨설팅 등 복귀 노려
2008년은 뉴욕 월가 거물들에겐 시련의 한 해였다. 사상 유례없는 금융위기 속에 전 세계 금융권을 주무르던 거대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이 경기침체의 주범이라는 비난 속에 줄줄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런 굴욕을 당한 CEO들이 이제 “우리도 예상 못한 상황의 피해자”라고 항변하며 명예회복을 위해 애쓰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23일 보도했다.
9월 파산한 리먼브러더스의 리처드 풀드 전 CEO는 “회사 정리절차를 마무리하겠다”며 요즘도 맨해튼 본사로 출근하고 있다. 이미 그의 사무실은 다른 사람이 차지했지만, ‘고릴라’로 불릴 만큼 승부욕이 강한 그는 연말까지 계속 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메릴린치의 스탠 오닐 전 CEO는 최근 투자회사 비전캐피털어드바이저스로부터 뉴욕 헤지펀드 매니저 자리를 제의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자들로부터 줄소송을 당했지만 모기지 사태가 금융위기로 번지기 전에 사임해 검찰 수사에서는 일단 벗어나 있다.
AIG의 마틴 설리번 전 CEO는 금융계 복귀 가능성이 매우 높은 인물로 꼽힌다. 올해 54세로 상대적으로 젊은 데다 17세에 입사해 평생을 바쳐 최고위직에 오른 인물이라는 점 등이 이유로 꼽힌다. 금융 자문회사나 사모펀드 운영회사로 갈 가능성이 높다.
모기지업체 패니메이의 대니얼 머드 전 CEO는 구직 인터뷰를 위해 자주 뉴욕을 드나들고 있지만 아직 새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패니메이와 양대 축을 이뤘던 프레디맥의 리처드 사일런 전 CEO는 64세의 고령이어서 복귀 가능성이 거의 없다.
또 다른 모기지업체 컨트리와이드의 앤절로 모질로 전 CEO는 금융당국 수사와 각종 집단소송에 시달릴 것으로 전망된다. 소위 ‘앤절로의 친구들’이라고 불리는 인맥관리 프로그램을 통해 거액의 접대나 로비활동을 해온 그는 변호사 선임에 큰돈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불명예 퇴진한 금융계 CEO 대부분은 회사가 망했는데도 최소 1000만 달러 이상의 보수를 받아 챙겼다. 회사 부실과 관련해 금융당국과 검찰의 수사 선상에 올라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이들은 모두 “이대로 끝낼 수 없다”며 재기를 노리고 있지만 각자가 놓인 처지는 다르다. 특히 이들이 금융질서를 무너뜨린 범죄자였는지, 아니면 그에 휩쓸린 희생양이었는지가 재기 여부에 결정적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노엘 기시 미시간대 교수는 경제전문 격주간지 포브스에 “해고당한 CEO들은 무능력하거나 타락했거나 둘 중 하나인데 올해 무너진 CEO 대부분은 그 경계를 짓기 어려운 회색지대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