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기업 중 상당수가 줄줄이 정부에 긴급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등 러시아 금융위기는 매우 혹독했지만 고려인 사업가는 위기에서 더욱 빛을 냈다.
시베리아 한복판 노보시비르스크 시에서 지방은행 우르사은행을 경영하던 이고리 김(42) 씨가 모스크바에 본부를 둔 MDM은행을 인수합병한다는 소문이 퍼졌을 때 일각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비웃었다. 우르사은행도 다른 은행처럼 돈줄이 말라 수십억 달러의 빚에 시달리고 있는 데다 무엇보다 김 씨가 소수 민족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씨는 우르사은행보다 덩치가 2배 이상 큰 MDM은행 경영진을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최근 인수합병을 성사시켰다. 김 씨는 이를 위해 해외에서 13억 달러를 유치하는 능력을 보여줬다.
김 씨는 합병 은행의 회장으로 취임할 예정. 양사의 시가총액은 186억 달러(약 24조4600억 원)로, 러시아 국책은행이나 외국계 은행을 제외한 민간은행 중 2위로 올라섰다.
인수합병 선언 후 우르사은행 주가는 30% 올랐다. 러시아 경제주간지 피난스는 지난주 김 씨를 가장 영향력 있는 금융인 20명 중의 한 명으로 선정했다.
러시아에서 여의도 면적보다 두 배 큰 농장을 운영하는 미하일 김(61) 씨도 최근 불황을 극복한 농업지도자로 부상했다. 그는 “올해 농산물 가격이 지난해의 절반으로 떨어졌지만 첨단 영농기계 도입과 도시 판매처 개발로 위기를 넘겼다”고 말했다.
이고리 최(59) 씨 등 고려인 출신 변호사들은 경제 불황으로 발생한 각종 사건 수임 선두를 달려 ‘경제위기의 사건 해결사’로 통하고 있다. 최 씨는 “고려인은 강제 이주를 겪었기 때문인지 위기에 유난히 강하다”며 활짝 웃었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