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은 왕조나 귀족정치를 혐오하면서도, 명문가의 이름에 끌리는 성향을 동시에 가졌다.”(하버드대 케네디스쿨 바버라 켈러먼 연구원·미국 공영라디오방송 인터뷰)
21세기, 더구나 ‘오바마의 새 시대’를 열어가려는 미국 정치권이 때 아닌 세습정치 논란에 휘말렸다.
논쟁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유일한 생존 자녀인 캐롤라인 케네디가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내놓을 의원직 승계를 위해 뛰기 시작하면서 불거졌다.
그동안 미국에선 명문가 세습정치가 당연시돼 왔으나 이번엔 무대가 워낙 ‘휘발성이 강한’ 지역인 뉴욕이어서 호락호락하지 않은 상황이다.
캐롤라인이 만약 주지사에 의해 의원직 승계자로 지명되면 케네디 집안의 7번째 의원이 된다. 고조할아버지는 하원의원, 할아버지는 대사, 아버지는 대통령, 삼촌 2명은 상원의원, 사촌 2명은 하원의원을 지낸(현직 포함) 정치가문의 바통을 이어받는 것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동생인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가 상원의원 선거 출마를 준비 중인 것도 논쟁에 기름을 부었다. 형 부시 대통령의 낮은 인기가 부담이긴 하지만 출마하면 무난히 당선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부시 가문은 3대에 걸쳐 상원의원과 2명의 대통령을 배출했다.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 당선인이 내놓은 상원의원직 잔여임기를 그의 보좌관이 승계하는 것도 세습정치에 비판적인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 현재 이라크에서 장교로 군복무 중인 바이든 당선인의 아들인 보 바이든 델라웨어 주 법무장관이 돌아오면 상원의원에 나설 수 있도록 보좌관에게 잠시 자리를 맡겨 놓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 때문.
차기 정부 내무장관에 내정된 켄 살라사르 상원의원이 내놓을 자리는 그의 형인 존 살라사르 하원의원이 물려받을 가능성이 크다.
유럽의 귀족제 잔재를 비판하는 미국 사회지만 명문가 세습정치는 의외로 뿌리가 깊다.
최근 브라운대 연구팀 조사에 따르면 미 초대 의회(1789∼1791년) 의원 가운데 45%의 후손이 의원이 됐다. 특히 켄터키 주의 브레킨리지 가문은 총 17명의 의원을 배출했다.
현직 상원의원 가운데는 11명이 전직 의원이나 주지사를 아버지로 뒀다. 쳇 컬버 아이오와 주지사도 전직 상원의원의 아들이다.
알래스카의 리사 무르코브스키 상원의원은 2002년 상원의원이던 아버지가 주지사가 되면서 딸을 상원의원 임기 승계자로 지명한 사례다.
최근 로드 블라고예비치 일리노이 주지사를 기소하면서 인기 스타가 된 리사 매디건 일리노이 주 법무장관의 아버지는 근 25년째 주 하원의장으로 재임 중이다. 42세의 여성인 매디건 장관은 36세 때 법무장관 선거에 도전했다.
미 공영라디오방송(NPR)의 정치평론가인 켄 루딘 씨는 “세습정치가 갈 때까지 가는 느낌”이라고 비판했다.
명문가 후손들이 약진하는 현상에 대해 “미국은 미디어 정치, 이미지 정치가 특히 강해 ‘누구의 아들 딸’이란 브랜드 효과가 크며, 큰 족적을 남긴 정치지도자 개인을 떠받들고 기리는 걸 어색하게 여기지 않는 사회여서 후손이 후광효과를 본다”는 분석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