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100t 퍼부어…지상군 접경지대 이동후 공격 대기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12월 29일 02시 58분


■ 이스라엘, 가자지구 대공습

공격 전날 검문소 개방해 하마스 방심 유도

하마스 보복공격 나서… 이스라엘 주민 대피령


이스라엘군이 주요 시설 230여 곳에 100여 t의 폭탄을 융단폭격한 가자지구는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지상군과 기갑부대를 가자지구 접경지대에 투입함으로써 이번 사태의 장기화를 예고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공포와 혼란에 뒤덮인 가자지구=뉴욕타임스는 가자지구의 중심 도시인 가자시티의 모습을 “건물 잔해가 여기저기 널려 있는 거리에 사이렌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찢어진 주검들이 뒹굴고 여성들은 울부짖고 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이 쏜 미사일의 일부는 하교 시간에 학생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에 떨어져 부모들이 아이를 찾아 거리를 헤매고 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하마스 측은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가자지구의 보안시설이 대부분 파괴됐으며 사망자 중에는 경찰총수인 타우피크 야베르 등 경찰 간부 3명이 포함됐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 일간 하아레츠는 정부가 하마스의 방심을 유도하면서 기습적으로 공격을 감행해 피해가 더 컸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24일 가자지구에 대한 공격을 결정했지만 언론에는 28일 각료회의에서 결정할 것처럼 ‘역정보’를 흘렸다. 26일에는 이례적으로 가자지구로 통하는 검문소를 개방해 구호품이 팔레스타인 난민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허락했다.

하마스가 로켓으로 보복 공격에 나서면서 이스라엘에도 비상이 걸렸다. 이스라엘 정부는 가자지구 접경지대로부터 반경 20km 내의 지역에 비상령을 선포하고 해당 지역 주민에게 안전시설로 대피하라고 지시했다.

▽이스라엘 “지상군 투입 초읽기”=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28일 “지상군을 배치할 필요가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일부 보병과 기갑부대 병력은 접경지대로 이동 중이어서 또 한 차례의 중동전쟁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는 “군사작전이 예상보다 길어질 것 같다”며 장기전을 예고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날 예비군 6500명에 대해 동원령을 내렸다.

하마스가 앞으로 자살폭탄 공격을 감행할 경우 이스라엘에서 대량 인명 피해가 발생해 사태가 더욱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

영국 싱크탱크인 ‘이슬람정치사상협회’의 아잠 타미미 대표는 “이스라엘이 경찰서를 집중 공습한 것은 사회질서를 혼란스럽게 해 가자지구의 하마스 정권을 전복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스라엘이 휴전협상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영국 BBC는 “며칠 전만 해도 휴전 상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양쪽의 이해가 맞아떨어질 경우 생각보다 빨리 다시 휴전협정이 맺어질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WP “오바마 중동평화 구상 차질”

오바마 측 “면밀히 보고 있다”


이스라엘의 대대적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공습이 버락 오바마 차기 미국 행정부의 중동 평화협상 구상에 차질을 빚게 만들 수 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28일 보도했다.

우드로윌슨국제연구센터의 애런 데이비스 밀러 씨는 이날 “하마스가 반격할 것”이라며 “이는 이-팔 협상을 조기에 성공적으로 이끌려던 오바마 당선인의 실낱같은 기회를 날려버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하와이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는 오바마 당선인은 일단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7월에 이스라엘을 방문했던 오바마 당선인은 “시민의 머리 위로 미사일이 떨어지는 것을 용납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만약 누군가가 내 두 딸이 자고 있는 집에 로켓을 발사한다면 나는 이를 막기 위해 내 모든 힘을 다할 것이며 이스라엘도 그렇게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강조했었다.

그러나 오바마 당선인의 국가안보담당 대변인인 브룩 앤더슨은 27일 “오바마 당선인이 가자지구의 상황 등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간단히 언급하고 추이를 지켜봤다. 이번 사태가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분명치 않은 상태에서 뭔가 언급한다는 게 부담스럽기 때문.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부시 대통령의 유산인 이라크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을 떠맡아야 하는 오바마 당선인에게 인도 뭄바이 테러와 이로 인한 인도-파키스탄 갈등에 이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까지도 ‘발등에 떨어진’ 현안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이스라엘 “하마스 로켓공격이 원인”

하 마 스 “이스라엘 봉쇄정책 때문”


“하마스의 로켓 공격으로부터 이스라엘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vs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봉쇄를 풀지 않은 채 학살을 자행했다”.

27일 이루어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 원인을 놓고 이스라엘 정부와 하마스는 상대방을 강하게 비난했다.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는 “이스라엘의 안보 상황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이 목표”라며 하마스의 지속적인 로켓 공격이 원인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반면 하마스 최고지도자인 칼레드 마샬은 “평화협상을 하려면 먼저 봉쇄를 풀고 국경을 개방했어야 했다”고 이스라엘을 비난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갈등은 지난해 6월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장악한 뒤 이스라엘이 전면 봉쇄정책을 실시하면서 증폭됐다. 가자지구 주민들은 극심한 생필품 부족에 시달렸다. 올 6월 이집트의 중재로 양측은 평화협정을 체결했지만 이스라엘은 봉쇄를 풀지 않았다.

지난달 초에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한 진입작전을 시도하면서 충돌이 빚어졌고, 이후 하마스가 로켓포로 대응하면서 전운이 감돌았다. 결국 6개월간의 휴전협정이 종료된 19일 이후 하마스는 휴전협정 연장을 거부하고 이스라엘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였다.

또 이스라엘의 복잡한 정치 상황도 이번 공습의 한 배경이라고 외신은 분석했다.

9월 카디마당의 새 총재로 선출된 치피 리브니 외교장관은 ‘비둘기파’로 분류되는 인물. 하지만 연정 구성에 실패해 내년 2월 10일 총선을 치르게 됐고, ‘매파’인 베냐민 네타냐후 전 총리의 리쿠드당이 여론조사에서 앞서면서 리브니 장관은 태도를 바꿨다.

시사주간 타임 인터넷판은 “리브니 장관이 하마스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밝히면서 네타냐후 전 총리와의 지지율 격차가 줄고 있다”고 분석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라이스 “휴전 파기는 하마스 책임”

아랍권 “이스라엘이 민간인 학살”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공습에 국제사회는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면서 양측의 무력 충돌 중단을 촉구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7일 밤 긴급회의를 소집한 뒤 성명을 통해 “가자지구에서의 군사행동을 즉각 멈춰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하마스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앞서 유혈폭력사태의 즉각적인 중단을 요구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무력충돌 사태에 대해 휴전을 깬 책임은 반(反)이스라엘 무장저항단체인 하마스에 있다면서 즉각적인 휴전상태 복원을 촉구했다.

유럽연합(EU)과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도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다.

하비에르 솔라나 유럽연합(EU) 외교정책 대표는 “이스라엘의 공습은 위기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평화적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랍권은 일제히 이스라엘을 비난하고 나섰으며 이스라엘 규탄 시위도 이어졌다.

푸아드 시니오라 레바논 총리는 27일 이스라엘의 공습을 “범죄 작전이자 새로운 대량학살”이라고 비난했다.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도 무고한 민간인들이 공격 목표가 되고 있다며 군사행동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스라엘과 아랍권의 화해를 중재해 온 사우디아라비아도 이스라엘을 비난했다.

아랍 국가들은 가자지구 내 이스라엘 군사행동을 비난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결의안 초안을 유엔 안보리에 제출했다. 아랍연맹은 31일 긴급 외무장관 회담을 열 계획이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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