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현지로펌 “美소매업 내년초 연쇄파산” 한국기업에 경고

  • 입력 2008년 12월 30일 03시 02분


수출업체들 “자칫 돈 떼일라”

선수금 요구 - 채권 회수 나서

신용도 낮은 바이어엔 납품물량 줄여

보증보험 가입 등 자구책 마련 안간힘

미국 소매 유통업체의 줄도산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이들 업체를 통해 미국에서 제품을 판매하는 국내 수출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이미 공급한 상품의 대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향후 미국 시장 판로가 막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내 업체들은 미 유통업체들에 대해 선수금을 요구하고 매출채권 회수에 나서는 등 자구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 선제적 대응

미국 소매 유통체인에 각종 생활용품을 납품하고 있는 연 매출 200억 원대의 국내 중견기업 A사 재무팀은 최근 이례적으로 미국 바이어에 대한 신용도를 조사했다.

현지 경기 침체에 따른 소비 심리 위축으로 납품대금을 떼이거나 이미 주문받은 납품이 취소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이 회사는 조사 결과 신용도가 하위 5, 6위로 나타난 바이어에 대해서는 물품을 선적하기 전 100% 외상거래를 했던 방식에서 선적하기 전에 납품대금의 절반을 받고 물건이 도착하면 나머지를 받는 방식으로 바꿨다.

이 회사 관계자는 “미국 유통업체에 납품하는 국내 업체들은 납품대금을 받지 못하느니 아예 납품하지 않는 게 낫다고 여겨 납품 물량을 최소로 줄이거나 납품 계약 기간을 1년 이상의 장기 계약으로 바꾸는 등 최대한 몸을 사리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매출채권 회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경기 침체로 물건을 제때 팔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부도 위기에 몰린 소매업체들이 국내 기업에 현금 지급을 늦추거나 주문을 취소하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 대기업도 비상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대형 전자업체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이들 회사는 11월 파산보호 신청을 한 미국의 2위 가전제품 유통업체인 서킷시티에 물품을 공급했는데, 미(未)회수 채권에 대해서는 내년 초 채권보험을 통해 손실 보전을 받기로 했다.

국내 전자업체들은 서킷시티에 납품하는 비율이 대미 수출 물량 중 미미해 아직까지는 괜찮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내년 초 추가로 발생할 수 있는 ‘연쇄 파산’의 리스크다.

미국 1위 가전 유통업체인 베스트바이는 10월 매출이 전년보다 7.6% 떨어지는 등 실적 부진으로 고전하고 있다.

내년에 추가로 파산하는 업체가 생겨나면 국내 기업들은 이들 업체에 대한 손실을 매출채권 보험으로 만회해야 하지만, 매출채권 보험의 보증한도가 실제 거래액보다 낮아 모든 손실을 보전받을 수 없다.

재계 관계자는 “일부 기업은 재무 상태가 좋지 않은 바이어에 납품하는 물량을 이미 보증한도 미만으로 조정하는 등 수출 물량을 스스로 줄이는 소극적인 영업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 미국 소매업 파산이 뇌관

산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미국에서 소매업을 시작으로 파산신청이 다른 분야로 확산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49년 역사의 의류 유통업체인 머빈스도 최근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국내 한 자동차 부품 업체는 미국 GM에 납품하려고 올해 초부터 50억 원을 들여 제품을 개발했지만 GM 측으로부터 납품을 미뤄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 회사는 제품 개발 투자금 회수는 아예 포기했고, GM이 파산했을 때를 대비해 이전 납품 물량 대금을 최대한 회수할 수 있는 방법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다.

이에 따라 매출채권 등을 떼이지 않기 위한 보험 가입도 늘고 있다.

올해 1∼11월 한국수출보험공사에 가입된 보증보험금은 120조3886억 원으로 2007년 한 해 동안의 실적(91조6275억 원)을 이미 훨씬 웃돈다.

김준규 KOTRA 구미팀 과장은 “한국은 대외 의존도가 높아 수출로 먹고사는 국가인 만큼 수출 물량을 줄이지 않으면서도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도록 보증보험의 한도를 늘리는 등의 적극적인 채권 보호 전략을 선제적으로 세워서 경제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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