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PC방 노숙자’ 늘어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12월 31일 03시 03분



쪽방 형태로 된 일본의 한 PC방. 경기침체로 하루아침에 하류 계층으로 전락하는 사람이 늘면서 일본에선 최근 PC방을 주민등록상 거주지로 신청하는 ‘넷 카페 난민’이 늘고 있다. 사진 출처 아사히닷컴
쪽방 형태로 된 일본의 한 PC방. 경기침체로 하루아침에 하류 계층으로 전락하는 사람이 늘면서 일본에선 최근 PC방을 주민등록상 거주지로 신청하는 ‘넷 카페 난민’이 늘고 있다. 사진 출처 아사히닷컴
주민등록상 거주지가 ‘사이버@ 카페’?

39세 이혼남 일본인 A 씨. 공사 현장 막노동으로 생계를 해결하고 있는 그는 현재 도쿄에서 가까운 사이타마(埼玉) 현 와라비(蕨) 시에 있는 PC방에서 살고 있다. 지난가을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사이버@카페’ 간판을 단 PC방으로 옮긴 그는 주민등록상 거주지도 PC방 주소로 적었다. 이 주소로 운전면허도 갱신하고 국민건강보험도 신청했다. A 씨는 현재 일본에서 번지고 있는 이른바 ‘넷 카페 난민(PC방에 사는 사람들)’이다.

오사카(大阪) 아동복지시설에서 일하던 그는 결혼 후 부동산회사로 옮겨 안정적 생활을 누리기도 했다. 업무 과중으로 가정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이혼당하고 설상가상으로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실업자로 전락했다.

현재 평균 월수입은 16만∼20만 엔(227만2000∼284만 원)이며 통장 잔액은 20만 엔가량이다. 그는 일자리를 알선해 줄 인력파견업체를 오가는 교통비도 줄이고 주거비를 아끼려고 결국 PC방을 택하게 됐다.

30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최근 일본에서는 A 씨처럼 PC방에 거주하며 주민등록상 주소로 신청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일본 PC방은 대부분 손님이 혼자 이용할 수 있는 독방들로 나뉘어 있어 칸막이 형태로 된 한국과는 다른 구조다.

방 하나 크기는 성인 한 명이 들어갈 정도로 작으며 내부에 PC, 의자 등 기본 설비가 마련돼 있어 한국의 ‘고시원 쪽방’을 연상케 한다. 일부 PC방은 A 씨 같은 장기 체류자를 위한 전용 쪽방을 만들어 임대사업을 할 정도다. 오랜 경기침체에 따른 ‘격차사회(隔差社會·양극화)’의 그늘이 서민들의 주거 환경까지 바꾸고 있는 것이다.

임차료는 매달 5만7600엔(81만7920원) 정도. 월세도 저렴한 데다 보증금, 보증인이 필요 없다는 게 큰 장점이다. A 씨가 살고 있는 PC방에는 주민등록상 주소지가 PC방으로 등록된 ‘주민’ 4명이 함께 살고 있다.

PC방 거주자가 늘자 총무성 자치행정국은 “(PC방을) 단기 임대주택 같은 개념으로 본다”고 밝혔다. 체류자의 장기 거주 의사가 확실하고 입주자가 퇴실할 경우 PC방 업주가 관청에 신고하는 등의 조건으로 주민등록 기재를 허용하고 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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