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대 발간된 책엔 ‘도문강’으로
중국이 간도(間島) 땅을 차지하기 위해 역사기록에서 백두산정계비에 새겨진 ‘토문(土門)강’의 이름을 장기간에 걸쳐 ‘도문(圖們)강’으로 조작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박선영(43) 교수는 31일 발간되는 학술지 ‘중국근현대사 연구’ 제40호에 게재한 ‘토문강을 둘러싼 중국의 역사조작 혐의’라는 논문에서 이같이 밝혔다.
중국이 토문강을 도문강(한국명 두만강·豆滿江)으로 날조해 왔다는 주장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중국 역사기록을 근거로 밝혀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선과 청은 1712년 ‘서쪽으로는 압록(鴨綠), 동쪽으로는 토문(土門)을 경계로 정한다’는 내용에 합의하고 백두산에 정계비를 세웠다. 그런데 후일 토문 강의 위치를 놓고 조선은 쑹화(松花) 강의 지류로, 청은 두만강으로 서로 다르게 주장해왔다.
정계비의 토문강이 도문강으로 인정받게 되면 네덜란드와 스위스보다도 큰 면적 4만2700km²의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 등 간도 지역이 모두 중국 땅이 되고, 토문강이 송화강의 지류로 인정되면 한국 땅이 되는 것이다.
박 교수에 따르면 백두산정계비를 세웠던 1700년대 초만 해도 중국의 역사책에 백두산 정상에서 발원하는 강은 ‘토문강’으로 기록된 데 반해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국경분쟁이 점차 격화된 180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토문강’과 ‘도문강’이 혼재돼 쓰이다가 1900년대 들어서는 완전히 ‘도문강’으로 정착됐다는 것.
박 교수는 이 근거로 청강희실록(淸康熙實錄)과 청사고(淸史稿) 등 백두산정계비가 세워진 1712년을 전후해 발간된 청 왕조의 역사기록에서는 백두산 정상에서 발원하는 강의 이름을 토문강으로 기록했지만, 1880년대에 발간된 같은 역사책에는 도문강으로 바꿔 기재한 사실을 들었다.
특히 1736년에 청 왕조가 발간한 지리지 성경통지(盛京通志)에 실린 ‘장백산도(長白山圖)’의 토문강이 뒤늦게 성경통지를 수록한 문연각사고전서(文淵閣四庫全書)에서는 갑자기 도문강으로 둔갑했다는 것.
박 교수는 이런 사실로 미뤄 볼 때 중국이 간도 땅을 차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역사기록을 조작한 혐의가 짙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중국이 토문강을 집중적으로 도문강으로 바꾼 시점이 조선과 청 왕조가 토문강의 위치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던 1880년대라는 점이 의혹을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이 같은 지명 조작은 현대에 들어와서도 계속되고 있다. 중국은 한국의 두만강이 중국이 말하는 투먼 강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1933년 옌지(延吉) 현 산하의 후이무둥(灰幕洞) 촌을 투먼(圖們)으로 고친 데 이어 이듬해엔 투먼 시로 승격시켰다.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