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인터뷰]박기태 “‘동해’ 표기 바꾼뒤 “실수였다” 사흘만에 다시 ‘일본해’”

  • 입력 2008년 12월 31일 14시 09분


박기태 반크 단장동아일보 자료사진
박기태 반크 단장
동아일보 자료사진
“일본역습 본격화…21C 안용복프로젝트로 대응”

한국 민간 외교사절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급격히 늘고 있다. ‘일본의 역습’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어 소개 코너에 ‘동해’(East of Sea)를 단독으로 명기했던 미국 정부기관인 가상통역센터(www.nvtc.gov)가 30일 ‘일본해’(Sea of Japan)로 다시 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8일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는 이 사이트가 미국 정부기관 사이트 중 처음으로 동해를 단독 표기했다고 밝혔었다. 이 센터는 CIA 연방수사국(FBI) 국무부 해군 등 16곳의 미국 안보 기구에 자문 역할을 하고 있다. 가상통역센터의 동해 단독 표기는 미국 정부 기관의 동해 표기 확산에 결정적인 근거가 될 것으로 기대됐었다. 그런데 10여일 만에 일본해로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진 30일, 서울 성북구 보문동 반크 사무실을 찾아 박기태(34) 단장을 만났다. 박 단장은 1999년 1월 반크 사이트를 개설한 후 교육과학기술부·국정홍보처·문화체육관광부 등 각종 정부부처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등 정부 산하단체, 대형 포털 사이트 등과 함께 ‘해외 한국 오류 시정 사업과 한국 바로 알리기 사업 등을 전개해 왔다.

“미(美) 가상통역센터가 무슨 개인 웹 사이트나 블로그 입니까. 미국의 13개 정보 부서에 정보를 공급해주는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이렇게 허무하게 일본 측의 요구에 따라 바꿔 주었다는 건 미국 정부로서도 창피한 일입니다. 게다가 일본해는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입니다. 향후 오바마 대통령이 국제사회에 ‘We can change’를 외친다고 하더라도 누가 그 말을 믿어 줄까요? 앞으로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따질 것입니다.”


“담당자 실수였다며 슬그머니 내려”

박 단장은 처음 반크를 시작했을 때는 세계 지도에서 3%가 동해, 97%가 일본해였다고 말했다. 지금은 일본 측에 따르면 18%가 동해, 우리 정부에 따르면 23%가 동해로 표기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반크 회원들의 노력으로 바뀐 지명들은 5-10일 지나면 다시 일본해로 번복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일본의 끈질긴 요구 때문이다. 일본은 반크의 노력으로 표기 변경이 됐다는 기사 내용을 모니터링에 국제 사회에 재 변경을 요구하는 근거로 삼고 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일본은 1950년대 이후 일본국제교육정보센터 등을 통해 전 세계를 상대로 자국을 홍보하는 데 힘써 왔다. 일본국제교육정보센터는 외무성 산하 기관으로 인적 구성 등 철저히 민간단체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여기에는 4000억원 상당의 막강한 예산이 쏟아 부어진다. 이 곳은 전 세계 교과서와 지도 등 각종 출판물에 동해가 ‘일본해’로, 독도가 ‘다케시마’로 잘못 표기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해외 유네스코에서 일본해로 표기 하기에 편지를 보내 동해가 병기 됐어요. 저희는 다른 국제기구에도 동해 표기가 뻗어나갈 수 있어 좋아했는데, 사흘 후 편지가 오더니 ‘담당자의 실수였다’며 다시 일본해로 돌아갔습니다. 인도의 유명한 출판사와 프랑스 대통령 사이트에서도 소리 소문 없이 원위치. 한 민간 사이트는 ‘한일간의 싸움에 휘말리기 싫다’고 아예 동해-일본해를 모두 빼 버렸고, 미국 모 출판사에서 일본해 표기를 동해로 바꾸니까 일본 정부에서 손해 배상을 하겠다고 압박을 가했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어요. 그럴 수록 저희는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하는 거죠.”

“1일 부터 21세기 안용복 2000명 양성”

반크는 역사, 영토, 문화 등 우리나라의 각종 정보에 관한 외국 사이트들의 오류를 유학생과 해외동포들로부터 제보 받아 바로 잡는 커뮤니티 사이트를 1월 1일 연다. 사이트 이름은 민간인의 몸으로 독도를 지킨 안용복에서 따온 ‘21세기 안용복 프로젝트(one.prkorea.com)다. 세계 200개 국가에 10명씩의 ‘민간 외교관 안용복’을 양성한다.

그동안 반크는 해외동포들로부터 약 5000건의 ‘외국 사이트 오류’를 제보 받았다. 실제로 최근 남한과 북한을 중국의 영토로 만들어 표기한 ‘야후 싱가포르 사이트 (sg.travel.yahoo.com)’ 등 상당수가 해외동포들이 알려준 것이다.

이렇게 해서 발굴된 사이트들은 체계적인 관리에 들어갈 예정이다. 전 세계에서 펑펑 터지는 한국 오류를 하나씩 잡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박 단장은 세계에서 한국 관련 정보가 표시되는 곳은 적게는 3000 곳에서 많게는 1만 군데에 불과하기 때문에 충분히 관리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회사 홍보실에서 언론을 관리하듯 주기적으로 한국 관련 정보를 보내고, 잘못 된 정보에 대해선 시정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에서 이런 일을 해주기를 기다렸지만, 안하니까 할 수 없죠. 우리가 예산이나 외교관 수로는 일본, 중국을 이길 수 없어요. 반대로 일본과 중국은 사람을 모을 수가 없어요. 우리는 무한대로 사람을 모을 수 있어요. 사람들의 열정을 조금만 활용하고 격려해 주면 될텐데 아쉬워요. ”

박 단장은 “이 일을 하면서 한번도 외교관을 만나본 적이 없어요. 왜 일개 펜팔 사이트인 반크가 하게 됐는지, 정부가 큰 틀에서 할 수 있는 건 무엇인지 민관이 머리를 맞대야 하지 않나요”라고 말하며 잠시 격해지기도 했다.

박 단장은 글로벌 청년리더 10만 명 양성사업에 뽑힌 청년들에게 ‘국가 홍보 민간 대사’ 임무도 함께 부여하고 나가기 전에 교육을 시키는 방법도 제안했다. 해외에 나가는 젊은이들이 한국을 소개할 때 ‘일본 옆, 중국 옆’이라고 하게 해서야 되겠냐는 말도 했다.

“한 가지 화나는 건 작년도에 세계 오피니언 리더를 국내로 데려와서 세미나를 여는 데 30억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데려와서 한 사람당 딱 20분 씩 발표 시간을 준다고 합니다. 그 석학도 돈 낭비가 아니냐고 하더군요. 30억이면 반크 회원 100만 명에게 택배를 보낼 수 있어요.”

“3000만원 삭감 소동 이후 1억 5000만원 기업 후원 생겨”

비록 뒤늦게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정치권에서 예산 지원을 확정하기는 했지만, 반크는 최근 정부로부터 예산을 3000만원 전액 삭감당할 뻔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일이 있은 후 기업 협찬비가 1억 5000만원이나 되는 등 전화위복이 됐다고. 반크는 현재 1인당 2만원씩 회비와 기업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직원은 6명이 한달 월세 90만원인 사무실에서 일한다. 홍보 책자를 만들어 200-300명에 보내는 비용도 한달에 약 1000만 원가량 든다.

“정부 돈에는 크게 의지하지 않습니다. 저희가 나라 돈 안 받겠다고 하니까 자꾸 정부와 저희를 싸움 붙이려는 분들이 계신데 그건 아니고, 정부가 저희 활동에 참여해 주고 관심 가져주는 게 300억 400억 짜리 도움입니다.”

31일은 반크의 홍보대사이기도 한 가수 김장훈이 내레이션을 맡은 다큐멘터리 영화 ‘미안하다 독도야(감독 최현묵)’가 개봉된다. 이 영화는 독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뜨거운 애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 속에는 박기태 단장과 반크의 회원들을 비롯해 독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박 단장은 “나의 에너자이저는 우리 회원들”이라고 말했다. 사무실에 가득 쌓여있는 ‘소주 팩’은 회원들이 연말 송년회에 쓰라고 보내온 것이라고. 박 단장에게 기억에 남는 회원을 꼽아 달라고 하자, 학원 강사 부모를 둔 한 초등학생 여자 회원의 이야기를 꺼냈다.

부모와 대화조차 하지 않았던 아이가 반크 활동을 하면서 이런 저런 자기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고. 열혈 회원이던 이 아이는 박 단장의 추천으로 모 방송국에서 반기문 사무총장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최근 부모는 1년 간 학원 강사를 그만두고 아이와 함께 케냐로 봉사활동을 떠났는데 이 장면은 영화 ‘미안하다 독도야’에 삽입되기도 했다. 몇 일전 부모가 반크에 편지를 보내왔는데 내용은 ‘1년 돈을 벌지 못한다 해도 우리 아이에게 유엔 사무총장의 꿈을 실어주기 위해서 떠났다’는 것이라고. 박 단장은 “엄마 아빠의 가치관을 변화 시킨 아이라면 세계인을 변화 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웃었다.

글=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영상=이철 동아닷컴 기자 kino27@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