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이코노미’ 현장을 가다]<4>오스트리아 무레크 시

  • 입력 2009년 1월 7일 02시 59분


천연 연료 쓰고 남은 전기 팔고… 온 마을이 ‘친환경 주식회사’

《지난해 말 오스트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그라츠에서 동남쪽으로 1시간을 달려 슬로베니에 인접한 작은 도시 무레크에 도착했다. 인구 1700명인 이곳은 얼핏 봐서는 중부 유럽의 평범한 농촌 마을과 다른 점이 별로 없다. 하지만 ‘그린 에너지’와 관련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곳이다. 폐식용유와 유채를 이용해 만든 바이오디젤만 판매하는 전용 주유소가 1994년 세계에서 처음 세워진 곳이다. 이 마을은 자체 생산하는 연료로 차량을 움직이고 지역난방도 해결한다. ‘에너지 자립’에 성공한 비결을 배우기 위해 지난해에만 전 세계에서 5000여 명이 이 도시를 방문했다. 무레크는 유럽 재생에너지 정책을 이끄는 기구인 ‘유로솔라’로부터 2001년 ‘세계 에너지 대상’을, 2006년에는 ‘유럽 태양에너지 대상’을 받았다.》

농부들 20년전 바이오디젤社 창립 ‘에너지 자립’ 씨앗

잡목이용 난방회사서 온수 공급… 석유 1500만L 대체

돼지분뇨로 발전… 이산화탄소도 줄여 환경-경제 윈윈

○ 농부들이 바이오디젤 회사 세워

무레크에는 에너지 관련 기업이 3개나 있다.

바이오디젤을 생산하는 ‘무레크 SEEG’와 이 마을의 지역난방 회사인 ‘나베르메’, 가축 분뇨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외코스트롬’이다.

이 중 가장 먼저 만들어진 회사는 무레크 SEEG다.

1985년 옥수수를 생산하고 돼지를 사육하던 농부 셋이 맥주를 마시는 자리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회사 설립의 계기가 됐다. 당시 농부 셋 중 한 명인 카를 토터 SEEG 이사는 “유채에서 바이오디젤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를 신문에서 보고 우리도 유채를 심기로 의기투합했다”고 말했다.

날이 갈수록 오르는 기름값과 남아도는 곡물 때문에 고민하던 이 지역 주민들도 이들의 아이디어에 큰 관심을 가졌다.

결국 1989년 지역 주민 570명은 120만 유로(약 22억 원)를 공동 투자해서 SEEG를 설립했다.

이곳에서 바이오디젤을 일찍 상업화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인근에 있는 그라츠대에 바이오디젤을 연구하는 학자가 있었던 것도 한몫을 했다.

마르틴 미텔바흐 그라츠대 교수는 1985년부터 유채와 폐식용유를 이용해 바이오디젤을 만드는 연구를 시작했다. 미텔바흐 교수는 1994년 폐식용유로 바이오디젤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SEEG는 미텔바흐 교수의 조언을 받으면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 전까지는 유채에서 바이오디젤을 생산해 수익성이 낮았지만 폐식용유를 이용하면서 수익성이 개선됐다. 이 무렵 무레크에 바이오디젤 전용 주유소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생겼다.

이 회사는 유채와 폐식용유를 이용해 연간 1000만 L의 바이오디젤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만들어진 바이오디젤은 지역의 자동차와 트랙터 등 농기계 연료로 사용되고 무레크에서 30km 떨어진 그라츠 시내버스 152대의 연료로도 공급된다.

직원 3명으로 출발한 이 회사는 지금은 2개의 자회사를 둔 ‘에너지그룹’으로 성장했다. 3개 기업에 근무하는 직원도 16명으로 늘었다.

매출도 급성장하고 있다.

2000년 213만 유로(약 39억 원)였던 매출이 지난해는 1000만 유로(약 185억 원)를 돌파했다.

회사 외형은 커졌지만 주요 의사 결정을 주민들이 하는 운영 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SEEG 주주인 주민들은 해마다 6월에 주주 총회를 연다. 새로운 사업 계획 등 회사와 관련된 중요한 결정이 여기서 내려진다. 임기가 4년인 사장도 주주들의 투표로 선출된다.

○ 에너지 자립도 170%

SEEG의 주주인 무레크 주민들은 SEEG가 궤도에 오르자 1998년 난방 관련 자회사인 나베르메를 세웠다.

나베르메가 난방을 하기 위해 사용하는 주 연료는 근처 숲에서 베어온 경제성 없는 잡목이다. 이 나무를 때서 물을 데우고, 데워진 물은 마을 전체에 깔아둔 파이프라인을 통해 각 가정과 학교 등으로 공급된다. 이곳 지역 주민의 90% 정도가 나베르메가 공급하는 온수를 통해 난방을 해결한다. 주민 카를 하이프 씨는 “무레크 주민들은 난방 걱정 없이 지낸다”고 말했다.

나베르메가 자리를 잡자 2005년에는 바이오전력 회사인 외코스트롬을 만들었다. 이 회사는 돼지 분뇨 등을 이용해 만든 전기를 한국의 한전에 해당하는 오스트리아 전력공사에 판매한다.

주민들은 태양광시민발전소 건설도 준비하고 있다. 주민 80여 명이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에너지 기업이 하나씩 만들어질 때마다 마을의 에너지 자립도는 높아졌다.

마을에서 필요한 에너지의 총량은 난방 전기 운송연료를 모두 합해 9만 MWh. SEEG 등 무레크의 3개 에너지 회사가 생산하는 에너지는 15만2000MWh로 에너지 자립도가 170%다. 잉여 전력은 타 지역에 판매해 수익을 올린다.

무레크 주민 한 사람이 1년에 에너지를 사용하는 데 들이는 돈은 평균 1500유로(약 277만 원). 무레크에 에너지 회사가 세워지기 전에는 이 돈이 마을 바깥으로 나갔지만 지금은 마을 안에서 머문다. 지역에 있는 바이오디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지역난방회사를 통해 난방을 해결하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투자한 에너지 회사에서 낮은 가격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받기 때문에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환경 보호에도 기여한다.

난방 부문에서만 석유 1500만 L를 대체하는 효과를 내고 있고, 이산화탄소 배출도 5만5000tCO₂(이산화탄소톤·1tCO₂은 전력 2500kWh를 사용할 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량) 줄였다.

무레크=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주민들 폐식용유 수거 ‘기름 붓고’

정부 친환경정책 지원 ‘불 붙이고’▼

■ 무레크 시 ‘에너지 자립’ 비결은

무레크가 에너지 자립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지역 주민들의 참여와 오스트리아 정부의 친환경 에너지 정책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10년째 자동차 연료로 사용되는 폐식용유를 수거하고 있다. 폐식용유가 나오면 버리는 대신 마을에 설치된 수거기에 내놓는다. 이렇게 모인 폐식용유는 ‘에코 서비스’라는 기업이 수거해 바이오디젤 생산회사 SEEG로 운송하는 시스템이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에코 서비스는 오스트리아뿐만 아니라 인근의 슬로베니아 등 동유럽 국가에서도 폐식용유를 수거해 SEEG에 공급한다.

무레크에서 61km 떨어진 그라츠에서도 폐식용유 수거를 위해 각 가정에 폐식용유 수거 용기를 나눠주고 있고, 오스트리아 전역에 있는 170곳의 맥도널드 매장도 폐식용유 재활용에 동참하고 있다. 덕분에 그라츠에서 운행하는 시내버스 중 152대가 폐식용유와 유채 씨로 만든 바이오디젤을 연료로 사용해 운행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 정부도 친환경 연료 보급에 적극적이다. 정부는 모든 경유 차량에 연료의 5%를 바이오디젤로 채우도록 의무화했다. 바이오디젤은 일반 경유와 가격은 비슷하지만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 발생량이 경유의 절반 수준이다.

오스트리아는 지난해 7월부터 일반 자동차를 대상으로 탄소부담금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는 신규 차량 구입 시 km당 배출 이산화탄소의 양이 180g을 초과할 경우 초과 g당 25유로(약 4만6000원)의 추가 부담금을 내는 것이다. 그 대신 하이브리드, 액화가스, 메탄가스 등 대체연료를 사용하는 자동차를 구매할 때는 500유로(약 92만 원)의 정부지원금이 지급된다.

SEEG 사장 요제프 라이터하스는 “오스트리아에서 소비되는 식용유는 한해 1인당 8L이고 수거 가능한 폐식용유는 이 가운데 3L”라며 “오스트리아 전체 인구가 800만이므로 식용유 2400만 L를 자동차 연료로 전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무레크=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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