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계빚 줄고 올 저축률 5% 상승 전망
미국 아이다호 주 보이시에 사는 40대 릭 캡 씨 가정은 부부와 13세, 16세의 두 아이로 이뤄진 전형적인 중산층이다.
반도체 장비회사에 다니는 그의 연봉은 6만5000달러 수준이다. 30년 모기지론으로 5년 전 장만한 17만5000달러짜리 주택에서 가족은 별로 부족함 없이 지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빚이 2006년 5만 달러로 불었지만 30만 달러로 오른 집값과 앞으로 받을 스톡옵션 등을 따져볼 때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이 가족은 그 사이 차를 한 대 더 장만했고 수천 km 떨어진 디즈니랜드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해마다 900달러짜리 스키장 이용권을 샀고 자녀의 바이올린 레슨 등 생활비를 아끼지 않았다.
변화는 갑자기 찾아왔다. 2006년 말 집값이 떨어지더니 이듬해 주가도 급락했다. 캡 씨의 회사도 2007년 말 정리해고를 시작했다.
이때부터 온 가족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저축을 시작했다.
자주 해 오던 가족 외식도, 작은 아이가 즐겨 보는 케이블TV의 만화 채널도 끊었다. 주방용 휴지를 행주로 바꿨고 조금이라도 싸게 사려고 이웃들과 함께 생필품을 대량 구매했다. 차 한 대를 팔고 25만 마일을 달린 1995년식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 그는 “난방비와 전기, 음식까지 줄일 수 있는 모든 것을 줄였다”고 말했다.
급기야 캡 씨는 지난해 10월 해고됐다. 그는 현재 퇴직금 1만 달러로 빚을 일부 갚고 나머지 돈으로 근근이 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6일 ‘위기의 가정이 마침내 지갑을 닫기 시작했다’란 제목으로 최근 수년간 미국 중산층의 소비 중독과 금융위기로 인한 급격한 생활 변화를 보도했다.
미국의 각 가정이 한결같이 절약에 나서면서 1952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초로 2008년 3분기(7∼9월) 가계 빚이 감소세로 돌아섰다. 또 한때 버는 돈보다 더 많이 써 마이너스 상태였던 개인 저축률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올해 5% 이상 수직 상승할 것으로 전망됐다.
문제는 근검절약 탓에 되레 경제위기가 악화된다는 점이다. 이 신문은 “저축을 많이 하고 지출을 줄일수록 경기 침체가 더 깊어지는 ‘절약의 역설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캡 씨 가족이 거주하는 도시의 식당과 소매점들은 지난해 잇달아 폐업했고, 실업률은 2007년 11월 2%대에서 1년 만에 6%로 치솟았다.
이헌진 기자 mungchi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