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러, 기업 물물교환 부활

  • 입력 2009년 1월 12일 02시 58분


지하경제의 상징인 모스크바의 시계 전당포.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지하경제의 상징인 모스크바의 시계 전당포.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기업간 거래의 10~15%… 돈줄 끊겨 월급도 물품으로

러시아 새해 연휴 마지막 날인 10일 오후 모스크바 남부 프로프사유즈나야 거리의 한 전당포 앞. 시민 이리나 사칼로마(54·여) 씨는 “작년에 500달러를 주고 산 스위스 시계를 맡기고 급한 돈 200달러를 마련했다”고 안도했다.

전당포 안 진열대에는 중고 시계가 빼곡히 쌓여 있었다. 종업원들은 “손님들이 시계를 맡기고 돈을 갚지 않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대출)만기가 지난 중고 시계는 인터넷 경매로 처분한다”고 말했다.

환전도 하는 이 전당포에서는 은행에서 달러 대출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찾아온 시민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이 가게의 환율은 달러당 35루블로 연휴 전날 러시아 중앙은행이 고시한 달러당 루블화 환율 29.2루블보다 20%가량 높다. 11일 모스크바 길거리 환전소에선 1달러가 32∼36루블에 거래됐다. 이날 중앙은행이 고시한 루블화 환율 30.6루블은 외환시장에선 통하지 않았다.

금융위기를 맞은 러시아에서 은행 대출이 막히고 환전도 쉽지 않자 1990년대 유행했던 전당포와 사채업 등 지하경제가 번창하고 있다.

러시아는 9월 금융위기 이후 외환보유액 5900억 달러 가운데 1800억 달러를 환율 방어에 동원했지만 새해 들어 루블화는 맥없이 무너지고 있다. 은행 등 제도권 금융도 기능 마비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의 130개 은행 중 100여 개가 정상 영업을 중단하고 동면상태에 빠졌다. 이런 제도권 금융의 공백을 지하경제 세력이 채우고 있는 것.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나도누 지역에선 새해부터 월급을 화장품, TV 같은 현물로 지급하겠다는 기업들이 등장했다. 주간지 아구멘트이팍트 신년호는 “프라이팬 유리그릇 통조림 화장지 구두 의류처럼 시장에 되팔 수 있는 현물을 받는 근로자들은 그나마 형편이 낫다”고 보도했다.

거래 은행이 문을 닫는 바람에 기업 간 거래에서도 사회주의 당시 유행했던 바터 거래(물물교환)가 되살아났다. 러시아 우랄지방 철강 제조업체들은 석탄회사에 스테인리스강을 주고 석탄을 사들이고 있다. 세르게이 아우쿠치오네크 모스크바 경제연구소장은 “이런 추세라면 올해 바터 거래가 국민경제에서 10∼15% 차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편 새해 들어 환율이 20% 급등한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에서도 환치기 업체와 사채업자들이 은행 뒷골목에서 성행하고 있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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