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다이어트 열풍이 한국 바나나값 올린다?

  • 입력 2009년 1월 19일 20시 14분


편집자 주: 한동안 서민의 과일로 불릴 정도로 손쉽게 구할 수 있었던 바나나. 요즘 바나나 값이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오르고 있다. 왜일까. 궤적을 찾아가보니 그 뒤에는 세계 경제의 작동 원리가 녹아 있었다. 바나나와 세계 경제,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을까.

18일 경기 용인 이마트 죽전점 지하 1층 식품매장.

며칠 전만 하더라도 100g 당 200원 안팎에 팔리던 바나나가 이날 100g 139원 행사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평소보다 30% 싼 가격이라 매장을 찾은 주부들은 너도나도 바나나 한 송이씩 집어 카트에 넣기 바빴다. 매장 관계자는 "주말 고객들 눈길을 끌기 위해 마진을 거의 포기하고 판다"고 말했다.

이날 매장에서 만단 주부 이정자(56·경기 용인) 씨는 "평소엔 바나나 가격이 너무 비싸 이렇게 싸게 팔 때 1, 2송이 씩 사 냉동실에 얼려둘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인근 롯데마트 수지점에서도 급등하는 바나나 수입원가를 견디지 못해 15일부터 판매가격을 종전보다 15%가량 올린 100g 당 228원에 팔고 있었다.

바나나 가격이 금(金) 값이 됐다. 하루가 다르게 뛰는 가격 때문에 바나나가 언제부터인가 서민들의 입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1년 전에 비해 40% 넘게 올랐다. 몇 개월 전만 해도 대형마트에 갈 때마다 한 송이씩 집어 들었지만 최근에는 가격이 너무 올라 바나나 매대가 썰렁할 정도다.

도대체 멈출 줄 모르는 바나나 가격, 그 뒤엔 어떤 비밀이 숨겨있는 것일까.

●일본과 중동 때문에….

이마트 수입과일담당 한규천 과장에게서 뜻밖의 말을 들었다. 바로 몸매 관리에 예민한 일본 여성들에게 바나나 다이어트 열풍이 불면서 바나나 가격이 올랐다는 것.

한 과장은 "일본의 한 약사 부부가 아침식사 대용으로 바나나 2, 3개와 물을 먹고 점심, 저녁 식사를 평소대로 하는 방법으로 큰 다이어트 효과를 얻었다는 경험담이 소개되면서 필리핀 등지에서 생산된 바나나가 대거 일본으로 몰렸다"고 전했다. 생산량이 한정된 상황에서 일본에서 대량 수요가 생겨 국제 바나나 가격이 오른 것이 국내 수입원가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었다.

한국델몬트후레쉬프로듀스 노경화 대리는 "바나나 다이어트 열풍으로 일본의 바나나 수입량이 예년보다 20~30% 늘어난 것으로 추정 된다"고 말했다.

바나나 몸값은 일본에서만 치솟은 것이 아니었다. 국제 원유(原油) 강세로 주머니 사정이 나아진 중동지역 소비자들이 바나나를 먹기 시작하면서 국제 가격 상승을 부채질했다. 일본과 중동지역에서 급증한 바나나 수요가 엉겁결에 국내 바나나 가격에도 영향을 미친 셈이다.

●환율도 무시 못해

바나나 수입업체들은 바나나 값 상승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난해 하반기 시작된 원-달러 환율 급등을 꼽았다.

나호섭 돌코리아 마케팅팀장은 "농산품은 공산품에 비해 생산원가가 2배나 높아 환율 상승분을 생산단계에서 완충시킬 여력이 없다"며 "환율이 1년 만에 40% 넘게 뛰다보니 덩달아 바나나 판매가격도 오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19일 현재 1년 전 948.7원보다 1353원으로 44.9% 올랐다. 반면 엔-달러 환율은 같은 기간 106.49엔에서 91.235엔으로 15.5% 하락했다.

예컨대 한국에서 바나나 1만 달러어치를 수입할 때 1년 전에는 948만7000원이 들었지만 현재는 1353만 원이 든다.

반면 일본은 같은 기간 수입 가격이 106만4900엔에서 91만2350엔으로 오히려 낮아졌다.

또 지난해 사과, 배, 딸기 등 국내 과일들이 풍작을 이뤄 예년보다 가격이 싸진 점도 바나나 수요 감소를 부추겼다.

대형마트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바나나 매출은 2007년에 비해 10% 넘게 줄어들었다. 환율 상승으로 제품 가격이 오른 점을 감안할 때 실제 바나나 수요 감소 폭은 그보다 더 큰 것으로 유통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나 팀장은 "환율이 이렇게 간다면 바나나 가격도 당분간 강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효진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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