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나에게 한 표 주실 거죠?”
31일 실시되는 이라크 지방선거에 출마한 아말 키바시 씨는 투표일을 앞두고 사드르 시를 누비며 행인들에게 상냥한 목소리로 지지를 호소했다.
지난해 5월까지만 해도 총알과 포탄이 날아다니던 대표적인 위험지역이었지만 지금은 베일을 쓴 그녀의 얼굴이 인쇄된 대형 선거 포스터가 건물 벽을 뒤덮고 있다.
“여성이 화장을 진하게 하거나 베일을 쓰지 않고 외출하면 총살할 것”이라는 살벌한 경고문이 나붙었던 바스라 시에서도 여성 후보 선거 포스터가 곳곳에 내걸렸다.
지방의원 440명을 뽑는 지방선거에 여성 후보 수천 명이 출마해 ‘여풍(女風)’이 거세다고 뉴욕타임스가 29일 보도했다.
1만4400명의 후보 가운데 무려 4000여 명이나 된다. 유혈사태가 빈번했던 이라크 치안이 안정된 덕분이라고 신문은 분석했다.
진흙을 바르거나 턱수염을 그려 넣는 등 벽보를 훼손해 성차별 의식을 드러내는 사례도 빈발하고 있지만 키바시 씨처럼 개의치 않고 선거유세를 하는 후보가 많다.
여성 후보들은 이번 선거를 부패할 대로 부패한 지방의회를 바꿀 기회로 여기고 있다. 남성들이 장악한 지방의회에 여성들이 진출해 제대로 감시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이라크는 중동 국가 중에서 비교적 여성들에게 관대했다.
1950년대 아랍권 최초로 여성 장관을 탄생시켰으며 일부다처제를 금지하고 이혼 시 여성의 양육권을 보장하는 진보적인 가족법이 제정되기도 했었다.
1979년 사담 후세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여성들의 권리가 크게 억압받는다는 여론이 일자 2005년 국회의원의 25%를 여성으로 할당한다는 규정을 헌법에 넣었다.
이번 선거에서 여성 의원이 다수 나오더라도 난관은 많다고 뉴욕타임스는 지적했다. 여성을 성적 대상이나 아이 낳는 존재로만 여기는 대다수 이라크 남성들의 뿌리 깊은 인식을 극복하는 게 가장 큰 과제라는 것이다.
현역 여성 국회의원인 사피아 탈레브 알수아일 씨는 “투쟁을 통해 비뚤어진 사고방식을 바꿔 나가야 한다”며 “국회에만 적용되는 25% 할당제도 지방의회까지 폭넓게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