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영화 5만5000점은 伊 시칠리아로 옮겨
미국 히피문화의 산실인 뉴욕 맨해튼 이스트빌리지의 중심가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시네마천국’이 있다. 아니, 있었다.
최근 경영난으로 폐업한 비디오 대여점 ‘킴스비디오’. 한때는 영화학도는 물론 우디 앨런, 스파이크 리, 마틴 스코세이지 등 영화감독들도 수시로 드나들던 뉴욕 컬트영화의 메카였다. 8일 뉴욕타임스는 뉴욕의 명물이 사라져가는 순간을 따라가 봤다.
1987년 20대 영화학도 김용남 씨는 뉴욕의 세탁소 한구석에 ‘킴스비디오’를 열었다. 김 씨는 “교수들이 구해보라던 영화를 찾을 수 없어 아예 가게를 열었다”고 회상했다.
시작은 초라했지만 김 씨의 열정이 더해져 곧 뉴욕의 명소가 됐다.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희귀영화만 5만5000여 점. 한창 때는 전 세계 회원 20만 명에 지점도 8개나 됐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영화를 내려받게 되면서 위기가 왔다. 영화를 빌려보는 회원도 1500여 명으로 줄었다. 지난해 9월 김 씨는 문을 닫기로 결심했다.
마지막으로 문을 연 지난달 17일 가게 앞에는 명물의 퇴장을 추억하려는 사람으로 넘쳐났다. “넷플릭스(온라인영화 대여업체)에 가입한 내가 킴스를 죽였다”, “한 세대가 끝났다”, “이런 공간을 다시 찾을 수 없다니 아쉽다”는 탄식이 이어졌다.
김 씨의 마음도 착잡했다. 그는 “오늘처럼만 손님들이 찾아왔다면 가게를 계속 열 수 있었을 것”라며 아쉬워했다.
뉴욕 명소는 사라지지만 김 씨의 ‘시네마천국’은 진행형이다. 김 씨는 지난해 소장 영화를 보존하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한다는 조건으로 소장품을 단체에 무료로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응답은 5000km 떨어진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왔다. 도시 재생 프로젝트를 추진하던 살레미 시는 김 씨의 소장품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네마천국’을 만들겠다고 약속한 것.
시는 ‘네버엔딩 페스티벌’을 열어 킴스비디오의 소장 영화를 연속 상영하고 전용상영관도 만들 계획이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